이준섭 취재2부 차장

정치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말은 언제나 그 다음을 요구받는다. 말이 방향이 되고, 구조가 되고, 책임이 될 때 비로소 정치의 언어는 생존한다. 그렇지 못한 말은 수사가 되고 반복은 결국 지역의 신뢰를 소모하기 마련이다. 지금 충청이 마주한 풍경은 말의 부재가 아니다. 말 이후의 부재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놓고 충청의 반발이 거세다. 해수부 이전은 부처 하나의 이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종시를 중심으로 쌓아올린 행정수도 구상의 축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 제2집무실, 국회 세종의사당, 공공기관 2차 이전, 대전·충남 행정통합 등 충청을 둘러싼 현안들이 퍽 가볍지 않다. 모두 국정 설계의 축을 구성하고 행정의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들이다. 이 흐름이 흩어지고 있는데 그 자리엔 대통령도, 여당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행정수도 완성과 국가균형발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정기획위원회는 그 핵심인 행정수도 명문화를 개헌 과제에서 제외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해명은 아직 없다. 무엇보다 해수부 이전 방침은 사전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정리됐다. 공약은 말로 존재했지만 실행은 구조로 전환되지 못했다. 공약의 구조화는 곧 신뢰의 구조이기도 하다. 그 단절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 회피로 읽힌다.

여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지난 주말 사이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들이 충청을 찾았지만 메시지는 낯설지 않았다. 고향의 인연, 민심 경청, 정치적 약속 등 반복되는 수사와 익숙한 형식 속에 지역 전략의 언급은 빠져 있었다. 충청이 왜 중요한지, 그 중요성이 어떻게 국정의 구조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건 없었다. 말은 있었지만 구조는 없었다. 말의 형식만 남고 실질은 실종됐다.

정치가 빠진 자리는 지역이 채우고 있다. 충청권 4개 지자체는 해수부 이전에 공동 대응 중이고, 대전·충남의 행정통합은 공론화 단계를 넘고 있다. 중앙정부의 설계가 빠진 자리에 지역 행정이 구조를 고민하면서 실행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이끌 정치의 실루엣은 어디에도 없다. 충청이 중요하다는 말은 있지만 정작 정치의 책임은 그 말 뒤에 숨어 있다. 지역은 대화를 요청하고 있는데 중앙정치는 여전히 독백을 반복하고 있다.

정치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말이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말은 진심이 아니거나 책임이 아니다. 특히 집권여당과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역을 소환했다면 그 무게까지 감당해야 한다. 반복되는 말로는 지역을 설득할 수 없다. 충청은 이미 충분히 들어왔다.

이제 필요한 건 구조와 실행이며 책임이다. 말에 선명한 뒷받침이 없다면 정치의 언어는 차라리 침묵만 못하다. 공허한 반복은 더 이상 유효한 정치 수단이 아니다.

정치의 언어는 언제나 시험대에 오른다. 그 언어가 살아남는 조건은 단 하나, 결과다. 지금 충청이 기다리는 건 그 결과다. 국정의 틀 안에서 말이 어떤 실천으로 이어지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길어질 수 있어도 비어 있는 말은 더는 견디지 못한다. 말이 남긴 공백은 결국 정치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책임에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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