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 이이김김] 나는 왜 지갑 열기를 망설였는가

2025. 11. 23 by 정근우 기자

   소비의 망설임이 만든 골목의 온도 ... ‘사고 싶다’보다 ‘참아야 한다’가 앞서는 순간들   

식당 앞에 잠깐 멈춰섰다. 거리 위에서 나는 분명 ‘집에 밥도 없겠다, 간단하게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라는 생각에 식당 앞을 한참 서성였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계산이 먼저 굴러가고 있었다. ‘이달 말에 나오는 전기요금은 얼마나 나올까’, ‘이달 카드 많이 썼는데 통장에 얼마 남았으려나’, ‘관리비도 이달부터 오른다고 하고 대출이자도 장난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외식이나 하자는 생각을 가로막았다. 소비는 기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망설임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오늘의 소비자들이 함께 겪는 불안의 징후였다.

소비할 때마다 작은 시험을 치르는 요즘이다. ‘정말 필요한가’, ‘집에 비슷한 것이 있지 않은가’, ‘지금 사면 후회하지 않을까’. 가성비는 어떤지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충동구매는 사라지고 이젠 모든 선택이 ‘뚜렷한 근거’를 요구한다. 평범한 한끼의 외식처럼 작은 지출조차 가계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월세와 관리비는 물론 통신비에 전기·가스·보험료 등 필수 지출이 커질수록 나머지 소비는 좁아진다. 소비자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지출을 조정하는 시대다.

이 부담은 거리의 작은 가게들로 고스란히 번진다. 내가 밥을 사먹지 않은 건 고작 8000원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 매출의 한 줄을 비우는 일이다. 비록 작은 한 줄이겠지만 여럿이 비슷한 선택을 한다면 골목 전체의 매출은 증발한다. 그래서 요즘 상권은 ‘손님이 없다’보다 ‘손님이 망설인다’라는 말이 더 적확하다. 소비자의 멈춤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존을 뒤흔드는 구조적 변화다. 많은 가게가 버티기를 말하지만 그 이전에 소비의 주저함이 있었다.

얼마 전 우리는 거리에서 하루 동안 빵과 볼펜을 팔았다. 수치와 자료가 아니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피부로 겪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처참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 손이 가다 멈추는 찰나의 순간, 가격표를 향한 짧은 고민까지 모두가 체감됐다. ‘아 조금만 사주지…’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동시에 깨달았다. 그 마음은 내가 소비자가 됐을 때 떠올렸던 바로 그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파는 사람의 간절함과 사는 사람의 불안이 좁은 골목에서 불편하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장부에 남은 수익보다 오래 남은 건 손님 한 명이 주는 의미였다. 소비자가 망설이는 순간과 팔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 사이의 틈이 얼마나 작은지, 그리고 그 작은 틈이 골목 경제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와닿았다. 우리는 소비자면서 자영업자였고 소상공인이었다. 회사원이라고 다른 건 아니었다. 똑같이 소비자면서 동시에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고용된 근로자와 같은 처지라는 사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과연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하는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궁금증이 원론적이나마 보이는 듯했다.

나는 왜 식당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나는 왜 지갑을 열기 전 많은 걸 고민했을까. 결국 답은 단순했다. 생활비의 무게, 불안정한 일상과 경기의 둔탁함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비의 망설임은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도시를 흐르는 공기다. 소비가 멈춘 자리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버팀은 길어지고 골목의 온도는 더 빠르게 식어간다. 사고 싶은 마음보다 참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는 시대. 지갑을 닫는 소비자와 버티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사이에서 도시는 조용히 체온을, 그리고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경제의 기초체력은 무너져 간다.

정근우 기자 gnu@ggil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