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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 원정대]
2구간 만인산길
대자연 속 녹색 힐링샤워

2019. 05. 09 by 이기준 기자
만인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5월 초인데 계절은 벌써 여름을 재촉한다. 산허리를 화려하게 수놓은 산꽃들이 꽃잎을 떨어뜨리고 연둣빛 신록(新綠)은 초록으로 한층 성숙해간다. 이팝나무가 산벚꽃의 바통을 이어받아 5월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성장하는 나무줄기에선 새 순이 돋아 가지 칠 준비를 한다. 노랗고 하얀 민들레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넓은잎각시붓꽃도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5월의 파란 하늘 아래서 봄을 노래한다. 약간의 온기를 품은 봄바람은 이 산 저 산 숲 곳곳을 휘감아 돌며 봄의 생명력에 힘을 불어넣는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대전둘레산길 2구간에서 두 팔 활짝 펼쳐 자연의 생명력, 녹색 에너지로 ‘힐링 샤워’를 한다.

 

[2구간 만인산길]

첩첩산중, 자연의 품에 안기다


◆심상찮은 기운…공짜는 없다
보문산과 오도산을 넘어 만난 금동고개, 이곳에서 다시 대전둘레산길 2구간이 시작된다. 중구와 동구의 구계를 따라 걷다 구간의 3분의 2 지점부턴 대전과 금산의 경계를 따라 만인산에 오르고 하산해 만인산휴게소에서 ‘봉이 호떡’을 즐기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만인산휴게소까지 공식 구간은 13.1㎞, 약 7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물론 산행 초보자는 시간적 여유를 더 둬야 한다. 코스가 만만찮다. 돌탑봉, 떡갈봉, 삼각점봉, 안산, 만인산 등 대여섯 개의 큰 봉우리를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 않다.
초반 돌탑봉 오르는 길부터 가파르게 전개된다. 왼쪽으로 식장산 전망대를 바라보며 몸 푸는 기분으로 약 20여 분 걷다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1시간정도 오르막을 타면 돌탑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돌탑봉(475m)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5분정도 더 가면 비로소 서쪽(대전 중구·서구)으로 첫 조망이 터진다. 산세를 감상하며 다시 20여 분 길을 잡으면 떡갈봉(499m, 출발 3㎞ 지점)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선 봉우리에 얽힌 전설을 만나게 되는데 내용은 이렇다.

 


‘옛날에 산에서 나무를 해다 금산장에 나가 팔아 근근이 생활하는 모자가 있었다. 아들은 홀어머니를 끔찍이 아끼는 효자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근심이 하나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아들이 장가를 못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나무 팔러 장에 나가면 뒷마당 고목나무 아래서 신령님께 며느리 하나 보게 해달라고 빌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을 뒤따라 고운 처녀가 집으로 황급히 들어오는 것이었다. ‘포졸들이 쫓아오니 저 좀 숨겨달라’면서 말이다. 이를 불쌍히 여긴 어머니는 처녀를 숨겨줬고 이 처자를 며느리로 맞았다. 처자는 열심히 집안일을 하면서 시어머니를 보살폈고 남편의 글공부도 도왔다. 호사다마(好事多魔)였을까 며느리를 맞아 집안에 윤기가 돌 무렵 아들이 산에 나무 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쳤고 어머니도 몸져누웠다. 며느리는 남편 대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았다. 운명을 직감했을까. 어머니는 병석에서 마지막으로 찹쌀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며느리는 장에 나가 나무를 팔아 찹쌀떡을 사오기 위해 날이 밝기도 전에 산에 올랐다. 동이 틀 무렵 봉우리에 올랐는데 참나무에 무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신기해서 가까이 가 보니 모두 찹쌀떡이었다. 며느리는 열심히 떡을 따 시어머니에게 가져다 줬다. 며느리는 이튿날에도 떡을 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앞에 꽃가마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원래 한양 귀가댁 규수였던 이 처자는 사화에 몰려 도망 온 것이었는데 사화가 풀려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꽃가마를 타고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향하던 며느리는 찹쌀떡이 매달려 있는 참나무 얘기를 해 주려 꽃가마를 돌렸는데 떡은 온 데 간 데 없고 나무만 있었다. 며느리는 꽃가마를 다시 한양으로 돌리면서 이 봉우리를 떡갈봉으로 불렀다.’


대전 동구 삼괴동에서 내려오는 이 전설로 ‘썰’을 풀면서 휴식을 취하고 그 떡갈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다시 길을 잡는다. 자연을 벗 삼아 새로운 생명과 마주하며 천천히 발길을 옮기면서 삼각점봉(얼갱이산, 491m, 출발 4㎞ 지점)과 443봉(출발 5㎞ 지점)을 차례로 넘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차례 반복돼 지치고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숲에 갇혀 온전히 짙은 녹음(綠陰) 속에서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산행 초보에겐 2구간의 초반 3분의 1은 고행(苦行)일 수 있는데 뭐든지 공짜는 없다. 클라이맥스를 만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맘 편하다.

◆ 만 길 높고 깊은 ‘만인산’을 향해
443봉부터 용궁사 갈림길까지 약 2㎞ 구간은 초반에 비해 비교적 순탄하게 펼쳐진다. 한가로이 오솔길 걷는 기분으로 가뿐하게 발길을 옮길 수 있다. 용궁사 갈림길에서 20분 정도 산행을 하면 떡갈봉의 전설을 소환하는 거대한 고목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 어귀에 있었다면 충분히 마을 보호수 역할을 했을 법 한 크기를 자랑한다. 10여 분 정도 오르막을 타면 ‘시 경계’와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어남동 방향으로 하산하면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를 만날 수 있고 만인산 방향으로 조금 더 오르면 안산(424m)에 도달하게 된다. 출발점부터 약 8㎞ 지점인데 동쪽으로 길을 틀면서 지금껏 발자국을 남긴 산봉우리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뒤로 식장산 정상까지 조망된다. 확 트인 산세를 감상하면서 하산하면 먹티고개(출발 9㎞ 지점)에 안착한다. 먹티고개는 나무가 많아 항상 어둡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이곳에 무연탄이 많이 매장돼 있어 산과 마을이 검다고 해서 ‘검은 고개’ 즉 ‘먹티’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금산이다.
먹티고개에서 2구간의 절정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만인산(萬仞山)에 오르는 길이다. 40분가량 가쁜 숨을 몰아쉬며 505고지에 오르면 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들이 조망된다. 잠시 내리막을 탔다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면 만인산(537m) 정상에 발을 딛게 된다. 동쪽으로 웅장한 서대산(903m)이 눈에 들어오고 뒤 돌아 서쪽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산 너머 산’의 절경과 수십 개의 산 능선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든다. 이 환희의 순간은 약 7시간의 산행에서 오는 발끝의 피로를 한 순간에 잊게 해줄 정도로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이 감동의 순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만인산을 찾는다.

 

만인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 기-승-전-만인산
조선시대 만인산 정상엔 봉화대가 있었다. 한양(서울)에서 오는 봉화 신호를 받아 호남으로 연결했다. 만인산 동쪽 2㎞ 지점에 있는 정기봉(580m)에선 만인산 봉화를 보고 영남으로 신호를 전했다.
하산하는 길, ‘태조대왕 태실(太祖大王 胎室)’을 만날 수 있다. 태조태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를 모신 곳을 말한다. 태조태실은 함경도 용연지역에 있었지만 무학대사가 1396년(태조 5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조선초 명산대천·명승고적을 두루 살피던 한 시인이 만인산을 보고 ‘산의 모양이 깊고 두터우며 굽이굽이 겹쳐진 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아흔 아홉 계곡의 물이 한 곳에 모여드는 명당’이라고 찬양했는데 조선왕실이 이를 확인하고 무학대사로 하여금 태실을 옮기도록 한 거다. 태를 봉안한 뒤 만인산은 태봉산(胎封山)으로 불렸다. 1928년 조선총독부가 태 항아리를 창경원으로 옮겨간 후 석비와 석조물만 남아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됐는데 1993년 유물들이 수습돼 현 위치에 복원됐다.

태조태실을 지나 만인산휴양림을 거쳐 만인산휴게소에서 2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휴양림은 나무 데크 등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아이들 숲 체험이나 연인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해졌다. 만인산휴게소(대전시 동구 하소동) ‘봉이 호떡’이 왜 유명해졌는지는 일단 가보고 맛보면 안다. 휴게소 주차장에서 만인산 정상 방향으로 약 10분정도 오르면 봉수레미골(골짜기)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대전 3대 하천 가운데 하나인 대전천의 발원지다.
대전시 만인산푸른학습원이 운영하는 만인산자연휴양림과 학습원은 시민에게 체험·연수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해 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모두 183만m²(학습원 14만 8000만m², 휴양림 168만m²) 규모다. 학습원은 대강당·대회의실·자연학습전시실·사랑방(체험실)·식당·숙소·천문대·야외교육장(목공체험실·운동장·야생화동산·숲속탐방로·유아숲체험장) 등으로 구성돼 있고 자연휴양림엔 만인산휴게소와 연못, 학습농장, 자연관찰로, 만인루 등이 조성돼 있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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