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시간] #2 대전 지하상가, 거리의 노인들

    노인들의 시간    

 

9시 30분, 9시 33분, 9시 37분….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단 5분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음이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복잡한 거리 위 노인의 시간은 적막함만 가득했다. 나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벤치에서 일어나 정처없이 걸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7분 정도 지나있었다. 그렇게 ‘노인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 오전 9시 40분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점포가 문을 열기 전부터 어르신들은 이곳을 찾았다. 한참 신문을 보던 맞은편 어르신은 일어나 걷기 시작했지만 목적지는 없었다.
▲ 오전 9시 40분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점포가 문을 열기 전부터 어르신들은 이곳을 찾았다. 한참 신문을 보던 맞은편 어르신은 일어나 걷기 시작했지만 목적지는 없었다.

◆그들처럼

지난 1일 오전 9시 30분경 이르다면 이르고 늦다면 늦은 시간 평소 어르신들이 많이 앉아있던 대전 중구 중앙로지하상가 벤치에 도착했다. 5~6개 벤치에는 이미 몇몇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소 착용하던 이어폰을 두고 집을 나온 터라 음악도 없이 이곳까지 오는 것도 지루했는데 도착하고나니 본격적으로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지하상가 분수대 주변 상가는 부지런히 문을 열고 영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포가 문을 열기 전부터 노인들은 이곳을 찾았다.

지하상가를 방문하는 모두를 위해 마련된 벤치였지만 가만히 앉아있으니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더군다나 젊은 청년이 출근도 하지 않고 벤치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더더욱 뒤통수가 따가웠다. 한 어르신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노인은 주섬주섬 신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의 시선은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의 발 끝에 있거나, 가게 점원들이 바쁘게 물건을 정리하는 손을 향했다.

 

그들의 시·공간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있기 10분도 숨막혀
옆자리 어르신 “갈 데가 없어”
걷다가 앉았다가 다시 걷다가…
사방 둘러봐도 ‘통로는 없었다’

지하상가 화려한 조명에 비치는 노년의 삶. 마음이 무거웠다.
지하상가 화려한 조명에 비치는 노년의 삶. 마음이 무거웠다.

◆ 씁쓸한 인사

“일찍 나오셨네? 날이 따뜻하네~.” “날 따뜻하면 뭐해, 지하에만 있는데.”

노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익숙한 얼굴을 보며 인사를 했다. 씁쓸했다. 지하에만 있어 계절을 느낄 수 없다는 어르신의 탄식.

옆자리 어르신은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았지만 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럴 만했다. 아무 것도 할 게 없으니 앉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지루함이 밀려왔다.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은 지하상가 홍보 영상과 벽기둥을 보고 있었다. 분명 주변에서 큰 소음이 들리는데 적막한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그냥 멀뚱히 있는 건 상당히 고역이었다. 신문을 보던 노인도,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노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나도 걸음을 옮겨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에 위치한 벤치로 향했다. 이곳에서 중앙분수대서 마주해있던 어르신을 다시 만났다.

무료함을 달래러 나온 노인들이 대전 중구 중앙로지하상가에 놓인 벤치에 앉아있다.
무료함을 달래러 나온 노인들이 대전 중구 중앙로지하상가에 놓인 벤치에 앉아있다.

◆ 소외된 시간

“매일 일찍 나오는데 갈 곳은 없고, 가만히 있기에는 눈치도 보이고 지루해 계속 움직인다. 아가씨는 왜 이러고 있어?” 그 어르신(78)은 내가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돈이 없어. 여기 구경거리가 천지인데 우리가 사거나 즐길 수 있는 것은 없어. 다 늙어서 돈이 어디 있겠어, 무료로 갈 수 있는 공간이 경로당인데 가면 내가 막내야 막내.”

주말은 더 고독하다. 3일 오후 3시경. 지하상가 끝 벤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부터 친구와 왁자지껄 웃어보이는 학생, 옷을 구경하는 사람들. 늘 보던 똑같은 풍경이었건만 벤치에서 바라보니 알 수 없는 고독함과 무료함이 숨을 조여왔다. 홀로 있었던 탓에 웃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그마한 무대 위 TV 속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들렸다.

◆ 살기 위한 방법

물론 거리 위 노인들이 모두 일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같은날 대전 서구의 한 도시철 역 인근. 노인 3~4명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주변 미용실과 헬스장, 학원 등을 안내하는 것들이었다.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단지를 건넸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는 노인들의 생계수단 중 하나다. 폐지를 줍는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을 벌 수 있어서다.

지상으로 올라와 만난 어르신들
생계 마지노선 전단지 배포 알바
“먹고 살려면 이거라도 해야지”
전단지 나눠주던 아흔살 어르신
무릎이 아파 앉기조차 힘들었다

클립아트코리아

아흔 살을 앞두고 있다는 한 어르신은 “하루 3~4시간 서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1만 5000원 정도 받고 있다. 알음알음 물어서 이 일을 알게 됐다. 집에서 놀면 뭐하냐”라며 “갈 곳도 없고, 노느니 일하는 거다. 그런데 요즘은 전단지 알바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전단지 알바를 하는 노인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무렵은 돼야 일이 끝난다. 전단지를 나눠주던 어르신은 무릎이 아파 앉기조차 힘들어했다.

사실 지자체 허가를 받지 않은 전단지 배포는 불법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관할 지자체의 승인을 받고, 일정 장소에서 전단지를 나눠줘야 한다. 자칫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음에도 이들이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갈 곳 없는 노인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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