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성심당을 찾아서]
‘성심당은 대전의 문화입니다.’
성심당 소개글의 첫 문구처럼 성심당이 대전에서 갖는 지위는 남다르다. 최근 한 프랜차이즈 빵집의 전국 매출을 넘어섰다는 통계까지 나올 정도로 지역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건 물론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대전은 기승전성심당’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만큼 성심당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 브랜드를 찾기 힘든 실정이다. 오죽하면 '성심광역시'라는 오명(?)과 함께 대전 간 김에 성심당 가는 게 아닌, 성심당 빵 사러 가는 김에 대전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분명 흙속에 진주는 있다. 대전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제2의 성심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노잼도시라는 오해와 편견은 잠시 내려두고 대전 일대를 둘러보면 시야가 트일 것이다. 성심당 버금가는 곳들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by 이재영·김세영 기자
유성온천역
대전에서 청년들이 가장 많은 곳을 꼽으라면 어디일까. 바로 유성온천역 일대다. 충남대학교와 KAIST, 넓게는 국립한밭대학교까지 끼고 있어 대전 중심 상권인 둔산동마저 저리 가라 싶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유성온천역에서 내려 충남대학교 옆 반석천을 향해 걷다보면 젊은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오케이슬로울리에 다다를 수 있다.
#. 천천히도 괜찮아 ‘오케이슬로울리’
상호명부터 ‘천천히도 괜찮다’라는 뜻을 가진 따뜻한 독립서점 ‘오케이슬로울리’. 지난해 6월 문을 연 신생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점주의 예술적 감각과 취향, 감성이 곳곳에 묻어있다. 각종 필기구, 엽서 등 다양한 굿즈와 공유 서재, 독립출판물, 서점주의 취향이 반영된 책 등이 이목을 끌고 있다. 아늑한 서점 안쪽에는 두 개의 나무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점주의 센스가 돋보인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작업 또는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면서 점주가 찾아오는 손님을 배려해 배치했단다. 한 곳은 예약, 한 곳은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게 비예약제로 운영되며 소정의 이용료를 내면 최대 3시간이나 오케이슬로울리의 따뜻하고 소박한 공간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사진 전시를 비롯해 작가 초청 북토크, 온라인 글쓰기 모임 등도 함께 운영하는 만큼 예술과 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곳을 한 번 쯤은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 우산거리의 성심당 ‘르뺑99-1’
오케이슬로울리에서 감성을 충족시켰다면 다음에는 배꼽시계를 달래보자.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함께 봉명동 우산거리 인근에는 소위 인스타 감성으로 무장한 ‘르뺑99-1’가 고소한 빵내음으로 유혹한다. 혹시라도 결정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오랜 시간 매장에 서 있을 터. 빵집의 기본 소양인 식빵과 바게트부터 빨미까레, 샌드위치, 여기에 르뺑의 주력메뉴인 페이스트리까지 빵돌이, 빵순이라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메뉴가 매장 곳곳에 펼쳐진다.

이 중 너무 달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슴슴한 크림치즈가 담긴 부추프레첼을 입에 한가득 넣으면 생부추와 생양파의 신선하면서도 건강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이것은 햄버거인가, 빵인가. 아니 둘다다. 빵임에도 불구하고 허기를 달래기 좋은 햄버거다. 배를 채웠다면 허니블랑으로 입가심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달달고소하면서도 어딘가 보드라운 식감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절로 생각나는 맛이다. 여기에 MZ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초코칩 쿠키를 얹어 놓은 크루아상인 크루키를 먹으면 왠지 젊어지는(?) 기분이다. 초코칩이 곳곳에 박힌 쿠키의 달콤바삭함과 크루아상 사이로 겹겹이 쌓인 고소함을 동시에 즐기는 것은 별미 중 별미니 젊어지고 싶다면 꼭 즐겨보자.
월평-갈마역
2010년대 후반부터는 선리단길(선화동+갈리단길)이 대전의 뉴트로 감성을 이끌면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면 최근엔 대전의 핫플레이스는 갈마동, 즉 갈리단길 일대다. 이곳은 확고히 지금의 유행을 선도하고 당분간 이를 이끌어 갈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소금빵의 숨은 강자 ‘후후베이크’
여기서 갈리단길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전에 월평역 5분 거리에 있는 ‘후후베이크’를 들러보자. 동네 빵집인 줄 알고 방심했다간 큰코다친다. 오픈 시간인 정오에 맞춰 달려가면 먹고 싶은 메뉴를 못 먹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조금은 이른 땡볕에도 불구하고 후후베이크의 소금빵을 맛보러 온 이들이 줄을 서있다. 메뉴가 많은 만큼 어떤 소금빵을 골라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럴 때 추천하는 메뉴는 우유크림 소금빵. 버터의 고소함과 느끼하지 않고 부드러운 우유크림, 토핑된 짭짤한 소금이 그야말로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극한의 맛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소금빵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먹물새우 소금빵은 쫀득한 식감 속에서 터져나오는 새우향이 일품이다. 만약에라도 빵은 갈색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고정관념을 깨고 한 번쯤은 먹물새우 맛을 집길 권한다. 먹물색 빵과 노란색 크림의 비주얼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 책의 향연 ‘바베트의 만찬’
갈리단길 일대가 맛있는 빵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로 무장해 있는 만큼 문화적인 공간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갈마역에서 내려 도보 5분도 걸리지 않는 골목 사이에 있는 ‘바베트의 만찬’이 우직하니 이곳을 지키고 있다. 어느덧 개점 3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이 곳은 이미 애서가 사이에서 이름난 곳이다. 책과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서점 이름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계와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담겼다. 여기에 점주의 취향이 담긴 북큐레이션은 나그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책 사이사이에는 옮긴이의 말, 독서모임 일정 등의 메모가 각각 끼워져 있는 점은 이 곳만의 매력포인트.

특히 대전지역 작가가 집필한 ‘파리의 아메리카노’는 물론 독립출판물 중 가장 많이 팔린 ‘스물다섯 가지 크리스마스’ 등 점주가 내색 없이 추천해주는 책은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어느새 마음 속에서 피어난다. 시원한 음료 한잔과 책장을 가득 메운 책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공간에 집중하게 된다. 언젠가 바베트의 만찬을 다시 떠올릴 때 이 곳이 정이 가득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임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중구청역(테미공원)
혹시라도 대전역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중구청역 인근에 보문산을 줄기로 하는 테미공원에서 발걸음을 멈춰보길 권장한다. 길지 않은 산책로에 생명력 가득한 식물들이 자리해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고 인근에는 테미오래와 테미놀이터가 있어 전국 유일의 관사촌 구경과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이렇듯 다양한 재미가 즐비한 대전이 아직도 노잼도시란 생각이 든다면 독립서점 ‘구구절절’을 추천한다. 대전을 사랑하는 책방지기들로 인해 당신은 어느새 대전에 홀려있을 것이다.
#. 문화 거점을 꿈꾸는 ‘구구절절’
테미공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구구절절은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파란색 타일의 건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어 차마 지나칠 수 없는 외형을 자랑한다. 서점 내부의 경우 책을 판매하는 공간과 작가의 집필 공간이 함께 존재할 뿐만 아니라 천장에는 수십 권의 책띠가 빨랫감처럼 나른하게 걸려 있는 게 꽤나 인상적이다. 누군가의 아지트를 침범한 느낌에 주춤한 찰나 책방지기가 담담히 반겨줄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점, 그곳을 지키는 시인. 소설에서나 볼 법한 설정에 이곳으로 자리 잡은 이유마저 극적이다.

인근에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가 있는 데다가 제2대전문학관이 들어설 예정인 만큼 청년의 적극적인 문화 참여, 나아가 대전 문화의 거점을 꿈꾸고 있단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책방지기의 행보에 걸맞게 ‘이문구 관촌수필 읽기’, ‘현진아 기다렸어’ 등 지역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은 서점을 방문하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사투리가 표준어로 대체되는 것이 문학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 언어에는 그 지역 사람의 태도와 마음이 담겨 있다’라는 취지의 이문구의 관촌수필 읽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문학과 지역문화를 생각하는 책방지기의 마음이 절실히 와닿을 것이다. 구구절절이 타 독립서점과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책방 구구절절의 책방지기는 종종 바뀔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처럼 어제와 오늘, 내일의 책방지기가 다르다는 점. 가게주인이 바뀌면 분위기도 바뀌는 만큼 매일 다른 책방지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두근(?)거릴 수도.
#. 수수하지만 세련된 ‘로로네 베이커리’
구구절절의 소박한 감성을 느꼈다면 이제는 대흥동에 위치한 ‘로로네베이커리’의 맛을 느낄 차례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이끌려 문을 열면 놀랄 수 있다. 빵의 비주얼 하나는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 중 피스타치오크림 리본빵의 경우 예상보다 귀여운 비주얼에 압도된다.

빵이라 생각하고 베어 물기엔 아까울 정도다. 날 것 그대로의 피스타치오 향을 느낄 수 있는 크림 사이에 숨겨진 라즈베리잼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평소 피스타치오맛을 좋아하거나 입문해 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추천. 여기에 로로네베이커리의 베스트 메뉴인 뺑애플은 호불호 없는 애플파이맛이 바삭함과 함께 스며든다. 그러나 반전이라면 촉촉한 커스터드크림이 가득하다는 점. 혹여나 애플파이의 바삭함과 에그타르트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먹고 싶은 이들이라면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가히 ‘겉바속촉’의 끝판왕이 아닐까.
글·사진=이재영·김세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