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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또 다른 위기를 낳다] ②기후 취약계층의 탄생

재난이 된 기후변화, 양극화의 씨앗

2024. 04. 22 by 김지현 기자

뜨거웠다, 습했다 4월의 이른 여름
게릴라성 호우로 순식간에 물바다
이른 더위에 노숙인 등 생명 위협

▲ 22일 대전역 주차장 벤치에서 사람들이 햇볕을 피해 앉아 있다. 김지현 기자

 

#1.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모(35·여) 씨는 다가올 여름이 두렵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아예 창문을 열 수 없고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다는 기상예보가 나오면 밤잠을 설쳐야해서다. 김 씨는 “여름이면 제습제 20개 가량을 집 곳곳에 둘 정도로 습하다”며 “요즘엔 장마철이 사라진 것 같다. 비가 아무 때나 수시로 쏟아지고 집중호우가 내리는 날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불편한 건 그렇다치더라도 집중호우 때문에 참사가 발생하진 않을까 늘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2. 이른 더위는 노숙인과 쪽방에 거주하는 이들의 여름나기를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여름이 오기도 전부터 최고기온이 24~26도를 웃돌면서 오래된 쪽방으로 흡수되는 바깥 더위의 열기가 숨을 턱 막히게 해서다. 6~7월을 기점으로 노숙인에게 보급되는 얼음물과 쿨토시도 역부족이다. 갈수록 여름의 길이가 길어지고 폭염일수도 많아지니 이들의 여름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재난 수준으로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사회적 양극화 현상 역시 더욱 커지고 있다. 취약계층은 경제적인 생존 위기가 늘 고통이었는데 요즘은 급변하는 기후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전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찍는 등 지구 온난화 등에 따른 기상이변에 취약계층은 적절한 대응에서 한 발 밀려나 있다는 얘기다. 기록적이고 끈질긴 폭염은 온열질환을 유발하고 단시간에 많은 강우를 쏟아내는 게릴라성 호우는 누군가의 집과 생명을 집어삼킨다. 기후 취약계층에 있어 집은 더이상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그래서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 백발의 노인이 22일 대전 중구 은행교 인근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지현 기자
한 백발의 노인이 22일 대전 중구 은행교 인근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지현 기자

올해 첫 더위는 평년보다 이르게 찾아왔다. 지난 14일 전국적으로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면서 올 4월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4월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충청권 대부분의 지역도 이날 낮 최고기온이 28~29도를 기록했다. 기상학적으로 여름은 보통 6~8월을 의미하는 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봄은 짧아지고 여름은 더욱 빨리 찾아와 더 길게 유지될 전망이다.

기후 취약계층의 걱정은 이른 더위만큼이나 빠르게 시작된다. 거주지가 마땅치 않은 노숙인의 경우 천변 인근이나 공공시설 등에서 오롯이 더위를 감당해야 하고 쪽방 역시 건물이 오래된 탓에 유달리 더위가 실내로 잘 스며든다. 이런 가운데 온열질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온열질환자는 2022년 1564명(추정사망자 9명)에서 2023년 2818명(〃 32명)으로 80.2% 증가했다. 이는 2018년 4526명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를 대상으로 얼음물이나 쿨토시, 냉방용품(냉방비) 등 여름나기 물품이 지급되는데 날이 이르게 더워지면서 지급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김태연 사무국장은 “날이 더워지면서 공공시설 등 실내로 들어가거나 하천 인근에서 더위를 식힌다. 보통 6~7월에 얼음물과 쿨티셔츠를 나눠주고 있다. 날씨에 따라 물품을 보급하는 간격이 빨라지기도 하는데 올해는 좀 더 일찍 보급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대전 동구 정동에 위치한 쪽방 건물. 김지현 기자
대전 동구 정동에 위치한 쪽방 건물. 김지현 기자

집중호우로 인한 참사도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그간 일정한 기간 지속해서 비가 내리는 장마 현상이 뚜렷했지만 최근 단시간에 급작스럽게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게릴라성 집중호우 양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상관측이 어려워졌고 곳곳에서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2022년 반지하 참사에 이어 2023년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지하로 유입되는 많은 양의 빗물로 지하 참사가 잇따랐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고 이후 반지하, 주차장 등 지하시설 등에서의 참사를 막고자 이동식 물막이판 등을 보급·설치하고 나섰지만 설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22일 대전 5개구에 따르면 지하를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2023년 기준 3515개 동이며 이 중 이동식 물막이판이 보급된 곳은 66개 동, 551개에 불과하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7조 2를 살펴보면 빗물 등의 유입으로 건축물이 침수되지 않도록 지하층 및 1층 출입구에 물막이판 등 해당 건축물의 침수를 방지할 수 있는 설비를 해야 한다. 이동식 물막이판이 설치된 대다수 반지하는 과거 5년 이내 침수 이력이 있던 곳으로 나머지 반지하의 경우 신청에 따라 이동식 물막이판 설치된다.

대전 한 자치구 관계자는 “과거의 침수 이력이 있는 곳 위주로 우선 설치하고 그 인근도 들여다보면서 대상자가 있으면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지하층을 주택으로 만들어 두고 사용하지 않는 곳도 있고 모든 곳을 전수조사하면서 설치하기까지 인력이 부족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재난사고가 급증함에 따라 안전대응 방안에 변화를 줘야한다고 강조한다. 우송정보대 소방안전학과 고왕렬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일고 있어 우리가 이전에 겪지 못한 고강도의 집중호우, 폭염, 태풍, 지진을 마주하고 있다”며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응할 수 있도록 대응을 위한 기준치를 낮춰 대비해야 한다. 특히 건물 등에 대해서도 변화하는 기후와 맞물려 보완하거나 새로운 안전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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