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오전 도시철도 1호선 내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이 일반 탑승객들로 꽉 차 있다. 좌석을 비워두라는 바닥문구가 그들의 발에 가려졌다. 김지현 기자

대전도시철도 열차에는 임산부 배려석 알림시스템인 ‘위드베이비’가 설치돼 있다. 임산부가 소지하고 있는 발신기로 열차에 부착된 수신기에 신호를 보내면 감지 후 점등해 자리 양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운영 중이다. 얼핏 임산부 배려문화의 소산으로 보이지만 고육지책이라는 점에서 쓴웃음이 나온다. 버젓이 임산부석이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승객들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데서 찾은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구실을 못 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이것이 저출산 1위 나라의 민낯은 아닐 것이다.

대전교통공사는 알림시스템을 설치·운영함으로써 임산부석 운영의 실효성을 높이고 시민 의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봤다. 아쉽게도 기대는 어긋났다. 이번 역시 시민 의식이 문제였다. 전용석이 무색하게 목적 외 점유가 다반사인 상황에서 임산부들이 눈치를 보느라 발신기를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 임산부가 있으니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대놓고 신호를 보내기가 여간 민망하지 않을 것이다.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자리를 비워두면 될 일이다.

그러나 양보와 배려를 강조하기엔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해보면 도시철도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임산부들에겐 부담이라고 한다. 자리를 선뜻 양보해주는 시민들이 적고 만원 버스에서 복중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감싸는 손을 두고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그쪽 사정’ 아니냐고 논란거리로 삼으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무개념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OECD 국가 중 저출산 1위인 우리나라다. 단언컨대 인구소멸국가로 분류될 만큼 심각하다. 정부가 백방으로 애쓰고 있지만 출산율은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다. 반등의 기미 따위는 보이질 않는다. 이런 풍조에서 임산부는 보호해야 마땅한 애국자들이라고 거창하게 들먹이지 않아도 임산부를 우대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대중교통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형편없었던 시절에도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들에게만큼은 자리를 양보하는 게 미덕이었다. 그야말로 ‘국룰’ 감이다.

2012년 전국 최초로 임산부석을 도입하고 여의하지 않자 배려석 알림시스템을 설치한 대전교통공사라 핀잔은 못 하겠다. 다만 왜 임산부들이 안전하게 앉아 가기가 힘든지에 대한 고민은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강제치 못해 막막할 테지만 그것이 홍보이든 다른 수단이든 편리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 주길 바란다.

저출산 문제와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시민 상당수는 임산부를 보호할 정도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기본적인 양식을 갖추지 못한 일부 때문이다. 의식 전환이 절실하다. 전용석을 비워두거나 내 자리를 양보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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