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다가구주택 비율은 34%로 전국 1위다. 수요층인 청년 인구가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대는 달라도 등기는 하나라 서류상 단독주택과 같이 취급하는 다가구주택이 먹잇감이라는 데서 대전의 전세 사기 피해는 고약한 악성을 띤다. 다가구주택은 전세 사기 특별법이 보장하는 방어권 행사조차 어렵다. 이런 가운데 대전 전세 사기 피해자의 80% 이상이 후순위 임차인임이 드러났다. 불편한 사실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국도시연구소 등이 대전 246곳을 포함해 전국 전세 사기 피해 가구 1500여 곳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대전 피해자의 80.1%는 다가구주택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중 80.9%는 최우선 변제 대상이 아닌 후순위 임차인이다. 후순위라는 것은 경매로 집이 팔리더라도 보증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실제 대전 피해자의 66%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전 전세 사기 피해자의 85%는 20∼30대 청년들이다. 전세 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언젠가는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야무진 꿈이 물거품 된 좌절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다가구주택을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는 하나 어느 세월에 실현될지 모른다. 이왕 할 거면 맥없이 주저앉기 전에 비빌 언덕이 돼 줘야 재기를 도울 수 있다.

판치는 사기는 전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안전한 월세살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간접 경험에서 얻은 학습효과일 텐데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이 편할 리 없다. 전세를 불신해 월세살이로 환승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면 시장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건 시간문제다.

여러 방면에서 후유증이 여간 아닌데 보호막이라 할 수 있는 전세 사기 특별법은 여전히 반쪽짜리 논란에 있다. 가장 빗발치는 요구는 ‘선구제 후구상’ 제도 도입이다. 피해 복구를 우선하지 않는 특별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전 전세 사기 대책위원회도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나 지금껏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대책위 집계에 따르면 올해 대전 지역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는 피해 건물 229채, 피해 가구 수 2563곳에 추정되는 피해 금액은 약 3000억 원이다. 그러나 전셋값이 치솟은 2021년 체결 계약분의 만기 도래 시 피해 신고와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대전시에 공식 접수된 피해 현황과는 좀 차이가 있으나 많은 건 매한가지다. 정부가 아니고선 감당할 재간이 없다. 특별법 보완 요구부터 경청해야 한다. 공정의 사다리는 놓아주지 못할망정 사기 피해 멍에는 벗겨 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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