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은 지난 15일 ‘미래세대를 위한 R&D(연구개발) 예산 관련 연구현장 소통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비효율적인 예산은 줄이고 미래 신성장 동력을 키워주는 연구개발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정부가 논란을 감수하고 R&D 예산을 수술대에 올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 과학기술 연구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달랬다. 추진상 미진한 점이 없지 않으나 보완 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전에서 열린 최고위원회를 통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황당무계하고 해괴한 일”이라며 당 차원의 예산 복원을 약속했다. 이어진 ‘대덕특구 50주년 기념 및 R&D 예산 관련 현장 간담회’에서도 “R&D 예산 복원은 당력을 총동원해 반드시 하겠다”고 거듭 별렀다. 강대강 대치의 결말이 어디에 이를지 몰라도 이공계에선 어쩔 수 없는 탄식이 쏟아진다. 맥빠질 노릇은 비단 R&D 예산 삭감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질적 개선과 구조조정 측면이 크다. 미래세대 연구자들이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혁신적인 연구에 실패 걱정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정책을 바꿔나가는 중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소회에서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호론보단 비판론이 커 보이는 건 프로세스의 문제라고 본다. 과학기술계조차 이해시키지 못한 상황에선 방향성이 맞더라도 날벼락으로 인식될 수 있다. 안 그래도 풀죽은 이공계다.

R&D 예산 삭감은 의대 정원 확대와 맞물려 인화성이 강해진 면이 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학생들이 장학금을 뱉어내면서까지 의대에 진학하는 게 이공계가 마주한 현실이다. 더구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정해진 상태다. 정원 확대를 위해 실시한 정부 수요 조사에서 대학의 증원 요구는 2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차후 확정될 증원 규모만큼 이공계 인재들이 이탈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묵묵히 한 우물을 파는 이공계 학생들까지 동요할 판이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이공계 지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의사 증원이 필요한 것처럼 국부 창출의 요람인 과학기술계의 인재 양성 또한 절실하니 유인책은 몰라도 최소한 연구개발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만한 수를 둬서는 못 쓴다. R&D 예산 삭감이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쪽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로 볼 수 있다.

삭감이든, 재구조화든 단견적으로 판단했다고 보진 않는다. 정책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니 무엇이 잘못인지는 감 잡았을 것이다. 소통부터 했으면 호응도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밀어붙이기 좋아하는 정부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덕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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