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섭리 거스르는 이상기후 연속

‘역대 가장 더운 해’ 기록 전망 속
이상 기온·기후 현상 계절마다 발생
짧아지는 겨울, 봄꽃 개화 빨라졌고
여름엔 폭염, 집중호우 현상 더 뚜렷

2023년이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란 전망이 담긴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의 보고서인데 전 지구적으로 올 1∼11월 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기온보다 1.46도나 높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게 골자다. 이는 같은 기간 역대 가장 더웠던 해인 2016년과 비교해도 0.13도 높은 수준이다.

‘1도 차이가 뭐 그리 대수냐’라고 할 수도 있다. 기상학적 체감기온 1도 차이는 실제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긴 시간에서의 변화를 살피는 기후의 관점에서 1도 차이는 매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 지구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한계치를 이미 초과한 상황에선 절망적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는 매우 큰 차이라고 기상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15년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본회의에서 195개국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보다 훨씬 아래로 유지해야 하고 가급적 1.5도 이내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기후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모든 사람, 특히 선진국 국민이 ‘불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에너지, 교통수단 등을 비롯해 ‘물리적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기후위기는 물질적 소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상한 조짐

지난 겨울(2022년 12∼2023년 2월) 대전·세종·충남지역 기온은 변동 폭이 매우 컸다. 기온이 높고 낮은 날이 큰 폭으로 번갈아 찾아왔고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낮은 영하 0.6도를 기록했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초겨울(2022년 12월)부터 기온 변동이 심했다. 전월(11월) 대비 기온 하강폭은 11.1도로 역대 가장 컸다.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 추운 날씨가 2주 이상 지속되기도 했다. 이후 1월 중순 기온이 일시적으로 크게 올랐다가 하순엔 다시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1월 기온 하강폭은 20.1도(1월 13일 평균기온 9.2도, 1월 25일 평균기온 영하 10.9도)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특히 초겨울 기온이 늦겨울보다 낮은 경향이 뚜렷했다. 초겨울(12월) 평균기온은 영하 2.1도, 늦겨울(2월)엔 1.6도로 3.7도의 기온차를 보여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월 한파일수는 0일로 역대 가장 적었다.

강수량도 적었다. 지난 겨울 대전·세종·충남지역 강수량은 53.5㎜로 2021년 겨울(17.7㎜)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평년(1991∼2000년, 87.5㎜) 대비 61.9% 수준에 머물렀다. 가뭄 위기는 올해 봄철 내내 이어졌고 농번기 농민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웠다.

◆ 이른 봄꽃 개화에 당혹

올해 대전 동구는 예년과 다름없이 벚꽃축제를 준비했지만 축제를 예정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벚꽃이 너무 일찍 꽃망울을 터트린 탓이다. 구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을 테마로 한 봄꽃 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는데 올해는 축제 시점과 벚꽃 개화 시점이 틀어져 행사에 차질이 빚어진 거다.

지난 3월 30일 대전 동구 대청호 인근에서 박희조 동구청장을 비롯한 동구 직원들이 4월 7~9일 열리는 대청호 벚꽃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축제 시점과 벚꽃 개화 시점이 틀어져 행사에 차질이 빚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축제’란 유행어를 남겼다. 동구 제공
지난 3월 30일 대전 동구 대청호 인근에서 박희조 동구청장을 비롯한 동구 직원들이 4월 7~9일 열리는 대청호 벚꽃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축제 시점과 벚꽃 개화 시점이 틀어져 행사에 차질이 빚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축제’란 유행어를 남겼다. 동구 제공

기상청이 발표하는 대전지역 벚꽃 개화 관측 기준은 대전기상청 내 관측표준목인데 올해는 3월 22일 개화했다. 벚꽃 개화 관측 이래 가장 빠른 것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3월 31일)보다 11일, 평년 평균(4월 4일)보단 13일이나 빠른 것이다. 3월 기온이 예년보다 높았기 때문인데 3월 25일까지 대전지역 평균기온은 3.9도로 지난해보다 2.1도나 높았고 일조시간 역시 지난해보다 53.7시간, 평년보단 26.1시간이나 많았다.

올해도 역시 기후변화에 대한 기록은 뚜렷하게 새겨졌다. 겨울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반면 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초봄 기온이 상승하면서 때이른 봄을 맞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올 봄(3∼5월) 대전·세종·충남지역 평균기온은 13.3도로 평년 대비 1.8도나 높았다. 현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다. 종전 가장 높았던 1998년(12.8도)보다 0.5도, 지난해(12.7도)보단 0.6도 높은 수준이다. 봄철 최고기온 평균 역시 20도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올해 지역 봄꽃 축제들이 줄줄이 직격탄을 맞은 이유다.

올 봄 기온이 크게 상승한 건 3월 이상고온 현상 때문이다. 지난 3월 지역 평균기온은 8.7도로 평년 대비 3.2도나 높았다. 유라시아 대륙의 따뜻한 공기가 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유입됐고 맑은 날 햇볕 등의 영향으로 3월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엔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폭염의 간접 영향을 받기도 했다. 4월 상순부터 중순까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이상적으로 발생한 고온역이 중국 남부지방까지 확장해 찬 대륙고기압이 이동성 고기압으로 변질됐다.

대전의 경우 2년 연속 봄철 평균기온 극값(1위)이 바뀌었다. 2021년 봄철 평균기온이 14도로 극값 타이 기록(2016년, 2014년)를 세우더니 2022년엔 14.2도로 기록을 갈아치웠고 올 봄엔 14.3도를 기록, 다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대전·세종·충남지역 봄철 강수량은 245㎜로 평년(173∼249.6㎜)과 비슷했다. 특히 5월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 침수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 봄 황사일수는 10일로 평년(5.7일)보다 4.3일 더 많았다. 특히 4월엔 황사발원지 주변에서 발생한 모래먼지가 매우 강한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 깊숙이 유입돼 황사 농도가 매우 높았다.

충청권 등 전국에 큰비가 내린 지난 7월 14일 갑천.
충청권 등 전국에 큰비가 내린 지난 7월 14일 갑천.

◆역대급 여름
올 여름(6∼8월)은 역대급으로 더웠고 강수량도 많았다. 특히 여름철 석달(6·7·8월) 모두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는데 지난 51년간 이런 경우는 단 3차례에 불과하다.

올 여름 대전·세종·충남지역 평균기온은 25도로 평년(24.1도)에 비해 0.9도 높았다. 2018년(25.6도), 1994년(25.6도), 2013년(25.3도)에 이어 역대 네 번째다.

대전기상청은 6월 하순~7월 상순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고온다습한 바람이 유입돼 기온이 크게 올랐고 8월 상순에는 태풍 카눈의 북상과 맞물려 태풍에서 상승한 기류가 우리나라 부근으로 하강하면서 기온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또 장마철에도 남풍이 강하게 불어 비가 내리는 날에도 밤사이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여름철 평균 최저기온 역시 21.2도를 기록, 평년(20,1도)보다 1.1도나 높았다.

올 여름 폭염일수(일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의 수)는 17.3일로 평년(9.8일)과 비교해 큰 격차를 보였다. 올 여름 폭염일수는 역대 5위에 해당한다. 1973년 이후 10년 평균 폭염일수는 각각 5.8일, 9.7일, 10.7일, 7.5일, 12.4일로 늘어나는 추세다. 열대야일수는 5.5일로 평년(6일)보단 적었다. 다만 1973년 이후 지역 10년 평균 열대야일수는 2.9일, 2.1일, 6.1일, 3.9일, 8.6일로 역시 증가 추세다.

올 여름 기후 관련 최대 이슈는 역시 강수량이었다. 올 여름 강수량은 1069.9㎜를 기록했는데 평년(719.2㎜)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고 1973년 이후 2011년(1338.9㎜), 1987년(1327㎜)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한다. 특히 장마철에만 813.8㎜가 쏟아지면서 장마철 강수량만 치면 2020년(834.8㎜)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자주 불었고 북쪽의 상층 기압골에서 유입된 찬 공기와 충돌하면서 저기압과 정체전선이 더욱 강화된 데 따른 것으로 대전기상청은 설명했다. 7월 14일에 특히 많은 비가 내렸는데 이날 대전과 금산, 부여, 서산 등에서 일강수량 1위 기록이 경신됐다.

장마철 이후 폭염이 지속되면서 대청호는 올 여름 내내 녹조에 신음했다. 예년에 비해서도 매우 심각한 상황을 보이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실감케 했다.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 11월 말 대전의 한 길목에 초록색의 은행잎이 떨어져있다.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 11월 말 대전의 한 길목에 초록색의 은행잎이 떨어져있다.

◆초록 낙엽

올 가을 은행나무는 노란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을 털어냈다. 은행나무들은 겨울이 찾아오기도 전에 가을 기온이 크게 떨어지자 서둘러 잎을 떨구고 월동을 준비했다.

올 가을(9∼11월) 평균기온은 14.9도로 평년 대비 0.9도 높았다. 1975년(15.2도), 2015년(15도)에 이어 역대 3위 기록이다. 9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도나 높은 22.6도를 기록했다. 역대 1위다.

올 가을 이상 기상현상 이슈는 역시 늦가을의 기온이었다. 11월 기온변동폭은 6.2도로 1979년(6.3도)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11월 초엔 일 평균기온이 19.2도(5일)까지 올랐다가 월 말엔 영하권(30일 영하 1.4도)으로 떨어지면서 급격한 기온 하강 폭을 보였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금강일보 블루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