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일 대전송촌중학교 교장

출근하려고 아파트 화단을 지나다 보니 벌써 봄꽃들이 봄을 알리려 준비가 한창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빨간 동백꽃 홀로 황량한 화단에서 고고히 겨울의 운치를 내뿜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수줍은 자태로 웅크린 백목련 꽃망울이 따스한 봄을 맞아 만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하루 무상히 흘러가는 일상인 듯해도 자연의 시간은 정해진 제 몫을 따라 흐르는 것을 보며 곧이어 봄과 함께 올 개학 풍경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에 개학은 늘 분주한 행사였다. 우선 새 학년에 쓸 교과서를 포장해야 한다. 예쁜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깨끗한 달력을 알맞게 잘라 교과서 표지를 싸야 했는데, 교과서 크기에 맞춰 적절한 여백까지 계산해서 달력을 자르고 접어 교과서를 싸는 것이라 시간과 힘이 많이 들었다. 학교 다니는 형제, 남매들의 교과서를 모두 꺼내놓고 형, 누나를 따라 내가 쓸 교과서를 싸다 보면 이제 곧 개학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방학과 함께 방 한구석에 방치했던 가방과 실내화, 체육복 등을 깨끗하게 빨아 두고 지우개, 연필과 같은 필기도구까지 필통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면 어느 정도 개학 준비가 끝난다. 포장해서 이름까지 쓴 교과서, 새 필기도구와 공책이 들어 있는 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며 빨리 내일이 되어 학교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학 동안 못 만난 친구들도 보고 싶고, 새 학년의 새 학급에서 어떤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 한 해를 보낼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개학 날 아침이 되어 있곤 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개학은 걱정이나 불안보다는 설렘과 기다림의 날이었다.

요즘은 교과서가 워낙 잘 나와서 포장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교과서 표지 디자인도 색색별로 예쁠 뿐만 아니라 코팅이 되어 오염물질이 묻으면 휴지로 쓱 닦아서 쓰면 된다. 이따금 드물게 교과서를 포장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교과서 크기에 맞게 만들어진 투명 비닐을 덮어씌우면 되는 정도라 예전만큼의 품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포장된 교과서를 보면 예전 학창 시절이 생각나고 반가워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어떤 설렘과 기다림으로 개학을 준비했는지. 너의 개학 준비는 어떤 마음과 함께였는지.

2월이 되면서 학교도 개학 준비로 분주하다. 근무 학교의 이동으로 송별 인사를 하는 선생님과 새 학교로 첫인사를 오시는 선생님들이 업무의 공백이 없도록 일 처리를 하느라 교무실이 붐빈다. 학교 여기저기에서는 아이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해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급식실에서는 청결한 급식 환경을 위해 방학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운동장에서는 운동 기구의 안전을 점검한다. 아이들이 공부할 교실의 책상 줄을 반듯하게 맞추고 부족한 것이 없는지 교실 이모저모를 살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학교에 있는 모든 분이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돌보고 있다.

교사가 되어서야 나의 학창 시절에도 이처럼 많은 어른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손길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뛰어놀며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치며 배울 수 있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꽃망울이 부지런해질수록 가정에서도 개학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새 학년 교과서를 펼치고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도 있고, 방학 동안 흐트러진 생활 루틴을 다시 바르게 만드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의 바람대로 삶에서 꺼내 볼 수 있는 학창 시절의 추억거리를 만드느라 하루 24시간이 바쁠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이와 함께 새 학년에 쓸 물건들을 구입하며, 혹은 아이의 교복을 정성스럽게 세탁하며 개학을 준비하는 학부모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 학년을 맞이하는 가정의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다를 수 있어도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새로움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봄처럼, 새 학년의 개학은 묵은때를 벗고 새롭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올해는 청룡의 해라고 하는데, 용과 관련된 고사성어 중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있다. 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찍어 넣는다는 뜻으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마무리함으로써 일을 완벽하게 마친다는 의미이다. 2월, 봄을 준비하는 꽃망울처럼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개학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마지막 핵심까지 놓치지 않고 잘 준비하여 아이들이 마음껏 배우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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