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가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다. 1845년에 발표한 이 단편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소녀, 안나는 12월의 마지막 날 밤, 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성냥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누더기 차림의 소녀가 파는 성냥을 사주지 않았다. 돈을 벌지 못하면 주정뱅이 삼촌에게 구박받기에 소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소녀가 성냥을 들고 눈 쌓인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동네 소년들이 달려와 소녀의 신발을 훔쳤다.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소녀는 인적 드문 골목에서 시린 손과 발을 녹이려고 성냥불을 켠다. 그러자 불빛 속에서 소녀가 바랐던 따뜻한 난로와 풍성한 만찬의 환영이 나타난다. 소녀는 기뻐했지만, 성냥불이 꺼지자, 환영도 사라졌다. 소녀는 세 번째 성냥을 켰다. 이번엔 불빛 속에서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할머니를 보게 된다. 점차 할머니의 모습이 흐려지자, 소녀는 자신을 혼자 두지 말라며 애원한다. 소녀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더 이상 춥거나 배고프지 않은 천국으로 떠난다. 다음날, 사람들은 눈에 덮인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의 주변엔 까맣게 탄 성냥이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지난밤 소녀를 무정하게 대했던 일을 후회한다. 눈을 감은 소녀의 얼굴엔 미소가 남아있었지만, 아무도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안데르센이 ‘성냥팔이 소녀’를 발표하던 시기는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극적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농업기술의 발달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규모 운송과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산업혁명이 시작된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린 ‘해가 지지 않는’ 강대한 국가였다.

인구가 증가하자 토지를 상속받지 못한 사람들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상경했다. 산업혁명으로 성장하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산업혁명 초기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노동자는 하루 12~16시간, 주 6일을 일했다.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10세 미만의 아동 노동자도 매일 12시간 내외의 노동을 했다. 탄광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굴속을 기어다니는 일과 좁은 굴뚝 청소를 하는 아이는 4살부터, 모직공장은 6살, 면직은 8살부터 고용했다고 한다. 아동 임금은 어른의 10~20% 수준으로, 싼값에 부릴 수 있고 반항하는 일도 없어 폭넓게 고용되었다.

성냥공장에선 성냥을 만드는 데 여아를 고용했다. 손이 작아 성냥을 만들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성냥 머리에 쓰는 발화 연소제를 백린으로 만들었는데, 백린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었다. 백린에 중독된 여아는 머리가 빠지고, 이가 누레지며, 턱뼈가 괴사하는 병에 걸렸다. 백린 중독으로 여아의 얼굴이 검게 변하면 공장에선 여아를 해고했다. 어떤 이야기에선 이렇게 쫓겨난 소녀들이 퇴직금 대신 성냥을 한 바구니 받게 되고, 그것을 팔아 끼니를 연명했다고도 한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박봉으로 일했으며, 시골에서 올라온 빈민들은 집이 없어 슬럼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쥐와 벌레가 들끓는 바닥을 피해 값싼 숙박시설을 이용했는데, 빼곡하게 붙여놓은 관에 누워 잠을 자는 ‘도스 하우스’, 벤치에 앉아 걸린 밧줄에 몸을 걸고 자는 ‘밧줄 여인숙’ 등이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대영제국은 만국박람회를 개최할 정도로 발전하고 부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그 이면엔 고통받는 노동자와 성냥팔이 소녀들의 삶이 공존했다.

2024년 1월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구직이나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쉬는 청년(15~29세)의 수가 40만 명이라고 한다. 대부분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이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있으면 산업혁명 시대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현재 한국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풍요로운 시기지만, 청년들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다. 청년들이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방 청년들은 수도권에 모여들고 있다.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다.

사회생활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직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청년들이 무슨 수로 결혼을 하겠으며 또 아이는 어떻게 낳을 수 있을까. 추락하는 혼인율과 출산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슬럼가의 밧줄에 몸을 걸고 잠을 청하는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과거, 풍요로운 시대에 외면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와 굴뚝을 청소하던 소년들이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는 여전히 겨울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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