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전까지 KTX를 탔다. 종전에는 무정차의 경우 50분이면 도착했는데 지난번 열차 시각 개편 때 3분이 늘어나 53분이 소요된다. 실제 소요된 시간은 8분 늦은 61분이었는데 지연에 따른 아무런 안내 방송이 없었다. 승객들도 으레 그런듯 무덤덤하게 하차하였다. 승무원에게 지연 사유를 물어보니 눈이 많이 내려 그렇다면서 연착 사과방송을 깜빡 잊었다고 하였다. 폭설은 이미 그쳤고 철로도 대부분 정상화된 즈음이었다. 과거에는 2∼3분만 늦어도 양해를 구하는 멘트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몇 분 정도 지연은 다반사인 듯싶다. 정차역이 적어 상대적으로 소요시간이 짧은 열차는 요금을 얼마 더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제도가 폐지된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열차 시각 개정이 이루어지면 소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상식인데 최근 개편에서는 오히려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서울-부산 무정차 직통열차도 수익성 때문인지 오래전 폐지되어 모든 열차가 최소한 대전, 동대구역에 정차한다.

개통 이후 20년, KTX 편성 비중은 차츰 높아져서 평일 기준 서울-부산을 운행하는 하행선 경부선 각급 열차 72회 중 KTX가 54편성으로 72%를 점한다. ITX새마을과 ITX마음이 각각 9회와 2회 그리고 무궁화가 9번 운행하여 고가의 상품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역 피라미드 형태의 기형적인 상품 판매 구조가 되었다.

2004년 4월 1일 개통한 KTX는 당시 서울-부산을 달리던 기존의 가장 빠른 열차 새마을호보다 1시간 30분 이상 단축하여 전국 일일생활권 시대를 연다는 기대가 컸다. 2010년 2단계 개통과 더불어 서울-부산 소요시간이 2시간 18분으로 훨씬 줄어들었다고 홍보했던 기억이 난다. 2시간 18분이면 공항까지의 소요시간과 대기시간을 포함한 항공편 이용보다 빨라 기대가 컸는데 개통 20주년이 다가오는 이즈음 서울-부산을 2시간 18분에 달리는 열차 편성은 1편에 불과하다. 2시간 40분대가 23편으로 대부분이고 영등포 수원 그리고 구포를 경유하는 일부 기존선로 이용 열차는 10편으로 최대 3시간 25분 소요된다.

개통 20년이면 초기에 비하여 운행기술 혁신과 합리적 운용으로 열차 소요시간이 상당부분 단축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은 우선 열차 운행이 크게 늘었고 정차역 증가 그리고 도심권에서 전철과 동일선로 사용 등으로 지체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KTX가 들여왔던 프랑스의 TGV는 그 나라 지형이 대부분 평야지대여서 일망무제 직선선로가 가설되어 속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다. 파리에서 리옹까지 500여 km를 2시간에 주파한다. 리옹부터 아비뇽, 마르세유를 지나 니스까지의 선로는 리옹까지보다는 다소 속도가 떨어지지만 서울-부산 400여 km를 2시간 40∼50분에 달리는 KTX보다는 속력과 안정감이 탁월하다. 산간지역의 비중이 높고 정차역이 많은 우리나라 현실로는 TGV보다 다른 선진 고속열차 기술 도입이 낫지 않았을까하고 도입 당시 정부의 정책 결정과정에서의 아쉬움이 남는다.

개통 20주년을 맞은 KTX가 내건 슬로건 ‘20년의 가치, 100년의 행복’을 가시화하려면 고속열차 본연의 임무인 운행시간 단축과 정시 운행, 노후열차 교체 그리고 노령세대를 비롯하여 굳이 빠른 차편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계층들을 위한 다양한 등급의 열차 증설이 필요하다. 빨리 도착하여 아낀 시간을 소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고속’열차 본연의 사명을 개통 20주년에 새롭게 새기기 바란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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