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우 대전성모여고 교사

푸른 용의 해가 시작되었다고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한 해의 안녕과 평안을 빌던 신년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마지막 주에 이르렀다. 학교는 신학기를 맞아 부서 이동과 업무 상황 점검, 변화된 교육 방식에 대한 다채로운 계획과 연수로 여념이 없다. 당장 다음 주가 개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아이들과 어떤 풍경으로 학급을 구성해나갈지 기대와 설렘이 함께 교차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난주에는 우리 반으로 배정된 교실을 정리했다. 우선, 올해도 교실 뒤 편에 학급용 대형 책꽂이를 계속해서 사용할 예정이어서 작년 우리 반 교실에 들렀다. 나와 아이들 모두가 소장하고 있던 책을 나눠 읽으며 꿈을 키워가자는 의미로 큰맘 먹고 장만했던 책꽂이다. 더 많은 책과 학급용 물품을 놓아두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나름 부피가 큰 물건인데, 직접 복도에서 끌어가며 학급에 놓았을 때 환호하던 아이들이 수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 듯했다. 최초의 주인이었던 아이들은 이미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담임을 이어오면서 맡았던 아이마다 계속 책꽂이를 사용하기를 원해 올해도 교실에 예쁘게 배치할 요량이었다.

그 책꽂이를 교실에서 빼어 뒷문 복도로 들고나오려는데, 문득 작년까지 이곳에서 함께했던 아이들과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며 마치 영상으로 재생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미 종업식을 거치며 함께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번 나누었지만, 무언가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 같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올해 새로 만날 아이들과도 새로운 정을 쌓을 것을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책꽂이를 새 교실로 옮겼다.

교실 맨 뒤에 책꽂이를 배치한 뒤, 사물함 주변과 청소 용구함 등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교실 바닥을 살살 쓸어가는 와중에 빈 교실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슬며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니 새로운 만남과 시작, 한 해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다양한 기대를 안고 시작하지만, 섣부른 판단과 확정적인 시각은 갖지 말기를, 올바른 학업 태도와 가치관에 대한 진지한 교육관을 견지하면서도 아이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과 여유를 갖기를, 열띤 상호작용으로 나와 아이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기원했다. 다양한 고민 끝에 책상 배열을 마무리한 뒤에는 서로의 자리와 짝꿍에 대해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미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작년에 우리 반 아이 하나가 학년 말 롤링페이퍼에 신반 담임 선생님으로 나를 새 교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묘사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무언가 감정 중립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보며 ‘내가 처음에는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을 바라봤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보면서 새 학년을 맞이하는 교사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긴장하고 떨었던 것 같다. 벌써 교직에 몸담은 지도 꽤 되어가지만, 올해 이 아이들이 날 잘 따라줄지, 나를 신뢰하고 지지해 줄 것인지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새 교실에 들어서는 첫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큰 신뢰를 받고 즐거운 한 해를 추억 속에 간직하게 된 지금 그때를 생각해 보면, 시간이 갈수록 내 교육 방식에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관성 있는 태도로 임했던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판단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며칠 전까지 새 학기 상담을 절반 정도 마쳤다. 개학하고도 충분히 시간이 있지만, 빨리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진학, 진로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니 얼른 학교에서 소통하고 싶은 에너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올해 말이 되었을 때 지금의 이 순간을 소중하게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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