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충남 대덕군)을 본적으로 둔 송 씨의 사망 기록.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일제강점기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강제 동원돼 헛되이 죽거나 끔찍한 고초를 겪었는지 또 얼마나 살아서 조국 땅을 다시 밟았는지 지금까지 신뢰할만한 통계는 없다. 역사를 전승하려는 노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학계와 관련 시민단체 등으로 폭이 좁아 힘에 부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에 다가설 가능성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는 가운데 가장 확실한 증거인 생존자들이 빠르게 줄고 있어 일제 강제 동원 피해를 산 역사로 기억해야 할 의무를 새삼 곱씹게 한다.

28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의료지원금을 받는 강제 동원 피해자 수는 올해 1월 기준 90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1264명이었는데 1년 새 360명이나 유명을 달리하며 채 1000명이 남지 않은 것이다. 2020년 3140명, 2021년 2400명, 2022년 1815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 생존자는 급감 추세다. 생존자들이 90∼100세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게 애석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이는 피해자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역사적 진실을 다음 세대가 계승하는 데 있어 조급할 필요성을 숙제로 남긴다. 시민모임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자료수집 및 발간, 피해자 구술 채록, 역사관 건립 등이 절실하다”고 피력한 이유 속에 후손 된 도리로서 부채이자 유지에 대한 이행 동기가 담겨 있다.

이제야 드러난 1923년 대전(충남 대덕군) 태생 송 씨의 기록은 우리가 왜 일제 강점의 피해의식이 아닌 끝나지 않은 피해의 굴레에서 살고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송 씨의 흔적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한 태평양전쟁기 ‘조선 출신 군인·군속 사망자 명부’에서 확인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작성한 명부 속 송 씨는 1943년 6월 약관의 나이에 제225설영대 소속 공원(工員)으로 끌려가 종전 후인 1945년 8월 30일 필리핀 세부섬 산중에서 영양실조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통지서는 아내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 맺힌 유해나마 귀향했는지, 후손이 있는지 등의 세부 사항은 확인할 길이 없다. 송 씨는 추정컨대 일제가 군인, 노무자 등으로 강제 동원한 780만 명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사지로 끌려간 이들 중 명부가 확인된 수는 8만 9656명이 전부다. 절대다수가 인간 이하의 노역에 시달리다 송 씨처럼 이역만리에서 개죽음당하거나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만신창이로 돌아왔을 텐데 피해 기록은 말소 상태인 게 광복 79년의 현주소다.

송 씨의 행적 공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 중인 조선 출신 군인·군속 사망자 명부를 확인하고 벌인 후속 작업 결과다. 정부가 나서 분발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존재와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역사에 남길 수 있어야 식민시대의 희생자를 대할 면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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