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교육연구소장

어떤 사람을 소인이라 하고 또 대인이라 할까.
왕조시대나 계급사회에서는 신분이나 계급에 의해 제도적·사회적으로 소인과 대인이 구분되었지요. 오늘날 평등사회에서는 제도나 신분이 아니라 사람의 인품으로 구분한다 하겠습니다. 옛날 같으면 같은 국회 건물 내에서 국회의원이 대인이라 하면 경비원은 소인 취급을 받았지요. 오늘날은 국회의원과 경비원의 비교가 아니라 같은 국회의원끼리 서로 인격적 평가를 하여 저 사람은 소인배야, 저 사람은 대인의 그릇을 지녔어 하지요. 다시 말해 지위, 권력, 부, 명성 같은 그 사람의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이나 가치관 같은 내면적인 것에 의해 대인, 소인으로 평가한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소인인가, 대인인가?
흔히들 매사 대범하고 스케일이 크고 영웅호걸의 기질을 가진 사람을 대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편견이지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인 공자의 인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온화하면서도 엄격하시며, 위엄이 있으시면서도 사납지 않으시며, 예의가 바르시면서도 까다롭지 않으셨다.’라 하였죠. 그러니까 공자의 인품은 어느 한 면만 지니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온화하면서도 엄격한 것처럼 양면을 다 지녔다 할 수 있지요. 대인이 되려면 ‘항상’ ~ 한 것이 아니라 ‘~ 하면서’ ~ 할 줄 아는 사람, 예를 들어 항상 엄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자님처럼 엄격하면서도 온화할 줄 알아야 하지요. 엄격함과 온화함은 대립적이지요. 이처럼 대립적으로 보이는 가치를 포용할 수 있어야 대인인 것이죠. 논어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온화한 자는 참으로 엄격할 수 있어야 하고, 참으로 엄격한 자는 참으로 온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대하거나 처세를 함에 있어서도 대인적이어야 합니다.
언제나 위엄있고 근엄한 모습과 처세를 하는 것만이 대인인 양 고집하는 것은 소인적이지요. 상황에 맞게 모습과 처세를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대인이 되어야 할 때는 대인의 모습과 처세, 소인이 되어야 할 때는 소인의 모습과 처세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하지요. 인생을 살면서 그때 상황에 맞게 처세하는 시중지도(時中之道)의 처세 즉 중용의 도(道)가 대인의 도(道)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공자의 처세에 대한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고향에 있을 때는 고향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손했던지 말을 잘 못하는 바보처럼 보였으나 조정에서 국정을 논할 때는 달변으로 사리를 따지고 조목조목 시비를 가렸다.’라 하였지요. 이러한 공자의 처세는 소인이 되어야 할 때와 대인이 되어야 할 때를 분명히 한 대인의 처세가 아닌가 합니다.
군자삼변(君子三變)이라 했습니다. 군자 즉 대인의 모습은 상황에 맞게 3가지로 변신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멀리서 보면 엄숙한 모습 즉 카리스마가 넘치나 가까이 대했을 때는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이요 말할 때는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죠. 언제나 근엄한 모습으로만 보이는 것은 소인이지요.
‘대인춘풍 하고 지기추상하라.(待人春風, 持己秋霜)’ 즉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온화하고, 자기를 다스릴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 하였습니다. 남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것은 소인이지요.
대인의 덕목을 지니고도 소인으로 보일 수 있는 경우가 있지요. 편벽된 처세를 하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지나친 경우이지요. 장점도 편벽되면 즉 지나치거나 치우치면 오히려 그 장점이 단점이 되고 말지요. 이렇게 되면 대인의 덕목을 지녔으면서도 소인으로 보이게 되지요. 예를 들어 지나치게 청렴하면 도리어 인색한 소인으로 보일 수 있고, 지나치게 인자하면 도리어 우유부단한 소인으로 보일 수 있고, 지나치게 시시비비를 가리면 도리어 각박한 소인으로 보일 수 있지요. 따라서 아무리 좋은 장점의 덕목을 지녔다 해도 지나치거나 치우치지 않는 과유불급의 처세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 정치도 주의 주장이 지나치거나 치우치지 않는 대인적 사회 대인적 정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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