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글을 읽고 쓰고 학교 졸업장을 받는 것으로 교육을 한정한다면 아마도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한 때 우리에게는 글을 쓰고 읽는 것을 해결할 문맹률을 낮추는 것을 교육의 핵심과제로 삼을 때가 있었다. 1950년대만 해도 선거철이 되면 입후보자들의 이름을 알기 위하여 야학을 하든지 어느 집에 모여서 글을 가르치는 경우도 참 많았다. 적어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이라도 알아야 투표장에 가서 그 이름과 기호 아래에 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로는 온 국민이 교육을 받을 의무가 정해졌었지만,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사사로이 글자를 익히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의무교육의 효과로 모두가 다 기초교육은 받았다. 지금 젊은층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초등을 거쳐 중·고까지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반 이상이 얼마간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니게 됐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서 뒤떨어져 있던 우리 사회의 경제와 생활수준은 높은 교육수준 덕분으로 빠르게 극복되어 선진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기뻐하기도 하였다. 이 때 큰 몫을 한 것이 사립교육기관들이다. 한 면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텅 비어있을까? 알이 꽉 차 있을까?

3월이 되면서 학교와 거리와 마을에는 어린이들의 명랑한 소리와 활발하고 씩씩한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 나이 때면 모두가 다 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사정이 안 되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다. 맘만 먹으면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혜택을 받거나 도움을 받아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겉은 그렇단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놀랍게 안타깝다.

새로 탄생하는 생명이 파격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시골에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들이 폐쇄되기 시작한 지는 벌써 오래 되었다. 면 단위의 초등학교에서는 어느 해는 입학생이 한두 사람, 네다섯 사람일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폐쇄되거나 축소되는 경우는 불을 보듯이 명확하다. 그 다음 대학은 더욱 더 난감하다. 지난 2023년 한 해 신생아는 23만 명이라고 한다. 올 해는 몇 명이 나올지 모른다. 이들이 자라서 학교를 갈 때가 되면 초등부터 매년 줄줄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줄어든 상태에서 학교의 시설들은 매우 좋아졌다. 그 시설들을 얼마나 잘 효과있게 활용하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 갖춘 시설과 교과 내용들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교육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능력있는 교사들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 이외에 걸리는 굉장히 복잡한 일들 때문에 그들이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정성을 다 쏟는지는 모르겠다. 교과목을 계획에 따라 가르치고 알게 하는 것 이외에 그 학생들의 생활과 인성과 덕성까지도 책임을 지게 하는 것 때문에,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다가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 문제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참 많다고 들었다. 이것들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학에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거의가 세금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유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매한 인격을 도야하고 높은 학문을 탐구하며 나라와 사회에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학들은 지금 어떤 형편에 와 있는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무능하고 무의미해 진 지는 오래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시험문제의 쉽고 어려운 것을 개혁의 한 축으로 삼으려 한다.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의 대학들일수록 사그러들어가는 현상은 아주 빠르게 퍼진다. 지역의 사립대학들부터 지원율과 입학률 그리고 등록률에 온 신경을 쓴다. 등록률이 대학재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역에 자리잡은 국립대학들에게도 이미 적용된 지 오래다. 그러니 그 많고 탁월한 대학의 시설들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대학들을 압력한다. 시설과 교원충원과 연구과제와 취업률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평가하고 지원하겠다는 쪼잔한 정책을 펼친다. 재정이 어려운 대학들은 학생 충원과 교원들을 비정년으로 채우려 몸부림을 친다. 여기에 수학능력이 탁월한 학생만을 선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자리만을 채워주는 것으로 고마워하고 만족해야 할 판이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분명히 얼마 지나면 스스로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학령인구가 파격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지원하는 학생수가 굉장히 많이 줄어들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재정능력이 없어서 문을 닫아야 할 대학들이 금방 줄줄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국가단위에서는 사립대학들을 국립화할 정책을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 사립대학들은 스스로 과감하게 축소하고 국가에 헌납할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학문과 깊은 공부를 할 고등교육과 생활교육을 나누어 역할을 분담할 교육제도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젊은이라면 그냥 통과의례로 지나와야 한다는 정도의 형편으로는 자신이나 사회 전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빠른 시간에 대학들과 정부가 합력하여 대학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교육을 통한 나라와 사회의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교육입국에서 교육망국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도산되기 전에, 깊은 정책으로 대학의 통폐합을 적극 펼칠 때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용기와 지혜를 모아 해결할 때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