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늦깎이 중학생”
중학과정 도전 노인들
많이 배워 대학진학 꿈꿔

▲ 6일 대전늘푸른학교 입학식이 열려 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은 누구나 알지만 늘그막에 도전하긴 두렵다. 나이 때문에, 생업 때문에 저마다의 이유로 쉽게 용기가 나지 않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하다. 6일 대전늘푸른학교엔 배움의 한을 풀고자 하는 늦깎이 중학생이 한데 모였다.

중학교 과정 입학식 전 책상 위에는 대전평생학습관 로고가 찍힌 가방이 놓여있었다. 제자리를 찾아간 신입생은 가방 안에 있던 알록달록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서를 꺼내 이리저리 넘겨본다. 성인용 교과서엔 빈칸이 참 많았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지만 교과서에 있는 문제는 답이 정해져 있으니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이에겐 어쩌면 학교 선생님이 정답을 알려주는 공부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늘푸른학교 신입생들이 사용할 교과서.
늘푸른학교 신입생들이 사용할 교과서.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입학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학년 1반 대표 신입생 A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학 소감문을 한자씩 낭독해갔다. 소감문 중 ‘남동생에게 학업을 양보해야만 했다’는 대목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입학식장을 둘러보니 60여 명의 입학생 중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여학생이었다. 그도 그럴 게 당신들 시절에 딸은 살림 밑천이란 용어가 통용될 때였고 양보와 희생은 늘 그들의 몫이었다. 그 시절이 그랬으니 학업은 오빠와 남동생의 것이었다.

A(66·여) 씨는 “공부하는 오빠와 남동생을 보면 뿌듯했지만 한편으론 응어리가 맺혔다. 희생을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던 동생이 추천해줘서 중학과정에 입학했는데 열심히 공부해 대학교까지 진학해보고 싶다”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또 다른 그 시절 딸 박기분(69·여) 씨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수십 년간 식당을 운영했다. 박 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와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며 자연스럽게 중학교를 진학할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배운 사람들이 많은 연구단지 근처에서 식당을 하며 괜히 움츠러들고 배움의 갈증을 느꼈는데 열심히 공부해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역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왕언니에 속하는 유옥희(87·여) 씨가 살던 좀 더 먼 옛날엔 초등학교만 진학해도 행운이었단다. 그만큼 중학교를 진학하는 딸들은 흔치 않았다고.

그는 “공부가 하고 싶어 혼자 천자문과 영어를 익혔지만 독학엔 한계가 있더라. 영어와 작문 수업이 가장 기대가 되는데 몰랐던 뜻을 배우고 글짓기해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입학식 막바지. 담임교사가 ‘빠삐따’ 라는 암호 같은 학교생활 규칙을 외친다.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고 학교에 다니자’는 뜻에 학생의 웃음이 터져나온다. 학생들의 힘찬 박수를 끝으로 입학식이 끝났다. 그러나 이들에겐 새로운 출발이 시작됐다.

글·사진=김고운 기자 kg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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