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호 취재2부장

어느 때보다 이념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철학이 이념이다”라고 강조하며 시작된 것 같다. 앞서 윤 대통령은 자유총연맹 축사에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 많다”라고 했고 광복절 축사 땐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反)국가 세력이 활개 치고 있다”라고 했다. 철 지난 이념이 무엇인지,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과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건 확실하다. 이념을 중요시하던 윤 대통령은 사실상 직접 지휘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 민생 현장에 더 들어가 챙겨야 한다. 이념 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라고 밝히며 이념 논쟁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최근 이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엔 정치판이 아니다. 영화판에서다. 영화 ‘파묘’의 흥행에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가 몰리고 있다. 고비를 넘어야 ‘노무현입니다’를 넘어설 수 있다”라는 발언이 등장하면서다. 파묘를 반일주의 영화로 지칭한 건 영화 전체적인 내용이 항일에 가깝기 때문으로 보인다. 파묘는 어느 한국계 미국인 부잣집의 의뢰에서 시작한다. 의뢰인은 무당 ‘화림(김고은 분)’에게 “큰 형이 정신병원에 있다가 자살한 이후부터 눈을 감으면 알 수 없는 비명이 들리고 아이 또한 아프다”라고 고민을 말한다. 화림은 묫바람, 즉 묫자리에 바람이 들어 조상 중 한 분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이라 진단한다. 화림은 제자 ‘봉길(이도현 분)’과 함께 지관 ‘상덕(최민식 분)’, 장의사 ‘영근(유해진 분)’을 찾아 파묘 작업을 진행한다. 화림, 봉길은 김상덕과 고영근에게 의뢰인에 대해 “밑도 끝도 없는 부자다”라고 했고 해당 의뢰인은 이후 밝혀지길 나라를 팔고 부자가 된 매국노의 후손이었다. 영화에서 대부분 거짓말이라 했지만 조선의 정기를 끊어내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도 사용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사용했단 점도 파묘를 좌파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화림은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이화림, 봉길은 윤봉길 의사의 이름에서 따왔고 상덕은 임시정부 국무위원, 광복 이후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영근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고영근을 추론케 한다. 영화 후반부엔 일본 도깨비인 오니(おに)를 네 명의 주인공이 물리치는 내용이다.감독이 던지는 메시지가 없는 영화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표면적으로 파묘가 반일을 부추긴다고 해석한 것 같다. 그러나 무속신앙이 영화를 이끌어가기에 누구는 오컬트 영화로, 누구는 우리나라에 해를 입히려는 외국 요괴를 물리치는 액션 영화로 볼 수 있다.

영화는 하나의 예술이다. 예술에 이념이 묻는 순간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기에도 예술은 휘발성이 강하다. 파묘를 굳이 정치적 이념이란 안경을 쓰고 보자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맞서 싸우는 게 좌파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보수이지 않을까. 그런데도 파묘가 ‘좌파가 몰리는 영화’로 보인다면, 파묘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파묘를 좌파로 몰아가는 시각이 편협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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