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감찬 장군

나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젊음이 출발을 가리고 있던 /
늙음의 문턱에 설 때까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세월을 허송하였구나 //
그것은 걸어서 가버린 것도 아니고/ 말 타고 간 것도 아닌데;
아,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날아가 버리고/ 내게는 어떤 것도 남겨 놓지 않았네. (……)

프랑수아 비용(1431∼1463 ?)이라는 프랑스 시인이 쓴 ‘후회’ 의 일부분이다. 머리가 좋았는지 1452년 파리 소르본 대학을 졸업했다. 그대로 잘 나갔다면 그의 자서시에 있듯 좋은 자리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난폭한 성질, 젊은 혈기로 불량친구들과 어울려 위험한 장난, 패싸움, 도박, 그리고 민중 봉기 등에 가담하며 스스로 고난의 길로 접어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여 신의 자비를 빌게 되었다. 비용은 이 시에 그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것, 그의 약점과 죄과, 사랑과 즐거움, 소망과 믿음, 인생무상, 죽음의 가혹함 등을 시행 속에 보여준다. 시에서 노래한 “… 늙음의 문턱에 설 때까지…”라는 구절에서처럼 15세기 유럽, 당시 섭생이며 위생상태와 질병 그리고 이런저런 삶의 위해요인으로 평균 수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짧았다지만 30대 초반에 이미 노년임을 실토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시인의 감성은 ‘젊은 노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엊그제 종영한 TV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시대 역사를 되새겨볼 드문 기회였다. 고증자료가 그리 많지 않아 당시 시대상 재현에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이런 저런 사정을 간과하고 단연 두드러진 캐릭터는 강감찬 장군(948∼1031)이었다. 귀주대첩의 혁혁한 전과로 고려의 국력과 위상이 크게 높아져 주변국에서 함부로 여기지 못했다는 몇 줄 기록으로 공부한 기억 이외에 강감찬 장군에 대한 지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던 차에 32부작 드라마로 소상히 당시 정황과 문물을 보고 듣게 되었다. 평생 문관이었던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과 맞선 싸움에서 처음으로 갑옷을 입었고 최고 지휘관이 되어 뛰어난 지략으로 거란군을 격파한 당시 나이가 71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수아 비용
​프랑수아 비용

위의 시를 쓴 프랑수아 비용은 강감찬 장군보다 거의 5세기 뒤의 인물인데 서른 즈음에 스스로 노인임을 토로했던 경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국왕이었던 현종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이 큰 힘이 되었겠지만 11세기 초, 일흔이 넘은 나이에 군사들을 진두지휘하였던 ‘젊은 노인’ 강감찬 장군의 생애와 업적은 이번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새로운 관심을 모을 만하다. 갑옷으로 감싼 그의 몸이 70대라는 것을 알고 바라보니 그 강건함과 용맹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1980년대 초반에 설정한 노인연령 65세가 그 후 40여 년 지속되고 있다. 작년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8.4%에 이르렀다는데 지난해 75만 가까운 1958년생이 65세 이상 그룹에 합류하였고 올해 1959년생 82만여 명, 내년에는 89만의 1960년 출생 그룹을 포괄하게 된다. 노인숫자가 급증한다고 우리 사회가 다가올 미래를 부정적,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싶다. 강감찬 장군처럼 ‘젊은 노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유형무형의 지원책을 강구하고 본인들 역시 끊임없이 ‘젊은 노인’의 삶을 지향하며 실천하는 의지가 필요한 이즈음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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