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테를지국립공원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몽골(Mongolia)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를 번갈아 받다가 1912년 청나라 몰락 후, 1921년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몽골은 1921년 7월 11일을 건국일로 기념하고, 이날을 나담 축제(Naadam)라 하여 거국적인 행사를 벌인다.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내몽골은 후금이 건국할 때부터 원나라 제국의 옥새를 후금에 바치고 청의 황제를 대칸(大汗)으로 모셨으나, 외몽골은 청에 대항하다가 멸망했다. 내몽골은 지금까지 중국의 영토 네이멍구로 남아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몽골은 외몽골이다.

외몽골은 1911년 7월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복드 칸(Bogd Khan)을 대칸으로 하여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복드 칸을 지지하는 러시아, 복드 칸과 협의 끝에 1915년 6월 중화민국은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도시 캬흐타에서 캬흐타 협정으로 몽골의 자치를 인정했지만, 러시아가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붕괴하자 태도를 바꿔서 외몽골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몽골은 독립을 위하여 꾸준히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러시아혁명으로 반 볼셰비키 파인 적군(赤軍)과 우익의 백군(白軍)이 내전 중에 백군을 지휘하던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이 몽골에 들어와서 복드 칸과 함께 중국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수흐바타르(Damdinï Suhbator)는 유목민을 선동하여 몽골인민당을 창설하고, 적군(赤軍)의 지원을 받아 중국군 잔당을 소탕하고, 백군 세력도 추방하여 후레(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사회주의국가를 세웠다.

몽골은 1948년부터 북한과 수교하였으나, 1989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중국·러시아 등 공산권과 수교할 때 1990년 한국과 수교했다. 몽골은 1992년 사회주의를 포기했는데, 현재 1인당 GNP가 3500달러 정도이다. 몽골인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국내 취업자가 날로 늘고, 또 몽골에서 엘도라도 차익을 얻으려는 한국인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 이외에 부산, 대구, 김해, 청주 등 지방 공항 이외에 올 5월부터는 무안공항에서도 몽골행 항공노선이 개통될 만큼 여행객이 폭주하고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구)칭기즈칸 국제공항이 있었으나, 늘어나는 수송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울란바토르 남쪽에 신공항을 건설하여 2021년 7월에 개항했지만, 신공항은 아직 인프라가 정비되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많다. 몽골까지는 약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러나 사실 몽골은 우리에게 그다지 유쾌한 나라가 아니다. 몽골인의 조상은 흉노족으로서 13세기에 영웅 칭기즈칸이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234년 그의 셋째아들 오고타이가 여진(금)을 정복하고, 여세를 몰아 1231년부터 고려를 침범했다.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하고 항전했으나, 결국 39년 만인 원종 11년(1270)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世祖)에게 항복하고 부마국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평균 해발 1585m에 이르는 고지대 국가 몽골의 면적은 한반도(22만㎦)의 7.1배나 되는 156.4만㎢에 인구는 350만 명으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몽골은 고지대 초원, 준사막, 사막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국토의 44%가 사막이고, 산림지역은 겨우 9%이다. 또 지리적으로 내륙 지역에 있는 몽골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강수량은 북부 산악지대는 350㎜이고, 남쪽 고비사막은 100㎜ 정도이다. 연간 1500~2000mm인 우리와 비교할 때 매우 건조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고지대에 있는 특성상 여름에도 평균기온은 17~23도로 낮고, 겨울은 평균 영하 26도~ 영하 18도로 매우 춥고 길다. 몽골인들은 이런 건조하고 척박한 고지대에서 수백 년 동안 유목 생활하며 살아왔는데, 말, 양, 염소, 소, 낙타를 '몽골의 5대 동물'이라고 한다.

몽골은 전통과 새로운 근대적 요소가 뒤섞여 있는데,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현대식 빌딩과 아파트가 많지만, 주민 대부분은 게르(ger)라고 하는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몽골의 인구 중 3분의 1이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을 만큼 도시 집중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몽골인은 라마교가 53%이고, 그밖에 이슬람교와 전통 샤머니즘을 믿고 있다.

1980년대 초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가까운 동남아 여행으로 시작된 우리는 2000년대부터 라오스·미얀마·인도 등으로 넓혀지면서 몽골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투자나 무역이 아닌 관광이라면, 광활한 대지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말과 양 낙타들의 모습과 체험, 그리고 우리가 1950~1960년대 우리가 여름밤 보석처럼 반짝이는 은하수를 구경할 수 있는 자연환경뿐이다. 아직 관광 인프라가 개발되지 않아서 수도 울란바토르와 이곳에서 약 84㎞ 떨어진 테를지 국립공원(Terelj), 그리고 남쪽의 고비사막(Gobi)과 북쪽 러시아와 국경 부근의 홉스굴 등이 있을 뿐이다. 주마간산 격으로 한 곳을 둘러본 뒤 몇 시간씩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또 다른 곳을 찾아가는 불편한 교통, 열악한 음식, 숙박시설로 불편함이 많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이런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활한 대지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 자신도 1990년대 말 태국.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서 호기롭게 태국의 국경도시 아란야 쁘라텟(Aranyaphrathet)에서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포이펫(Poipet)을 거쳐 유명한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까지 육로로 여행한 적이 있다. 태국은 국경 초소까지 왕복 6차선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였으나, 캄보디아의 포이펫부터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세상이었다. 포이펫에서 씨엠립까지 150여km인데, 흙먼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엉망인 비포장도로였다. 물론 지금은 씨엠립까지 도로포장이 되었다. 또, 2000년 초 동유럽 여행을 하면서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여행할 때도 중간에 슬로바키아를 경유했는데, 잠시 정차하여 점심을 먹고 주유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관광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몽골 여행은 나이도 젊고 시간도 넉넉했다면 좋았겠지만, 이순을 훌쩍 넘어 매우 불편했다. 참고로 울란바토르와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고, 고지대의 특성상 여름철에도 밤에는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약간 긴소매 옷이나 가벼운 패딩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몽골의 통화는 투그릭(Tugrik)으로 원화와의 비율은 2.5:1이어서 1000원이 2500투그릭이다.

엘승다사르하이 승마
엘승다사르하이 승마
울란바트로 공항
울란바트로 공항
울란바타르 전경
울란바타르 전경
복드칸 겨울궁전
복드칸 겨울궁전
수흐바타르 광장
수흐바타르 광장
자이승 전망대
자이승 전망대
테를지 아리야발 사원
테를지 아리야발 사원
카라코룸박물관
카라코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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