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미(Help Me) 신초지 여사
염량세태(炎凉世態) 권력자들 안타까워

▲ 신초지 여사가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의 레퍼토리는 항상 비슷했다. 천사표 주인공은 마지막에 복을 받고, 악행을 일삼으며 주인공을 괴롭히던 악당은 벌을 받으며 끝이 나곤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악인(惡人)은 더 당당하고 선인(善人)은 늘 전전긍긍하며 사는 세상이다. 신초지(84) 여사는 그런 세상에 경종을 울린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당연한 진리를 그는 믿는다. 12일 신 여사가 실천해 온 나눔의 진면목을 들어봤다.

그가 나눔을 실천하게 된 것은 영적체험이 계기였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신 여사는 집에 새어든 연탄가스로 닷새간 사경을 헤매야 했다.

“그때 본 무서운 저승의 모습에 아직도 편히 잠을 못자요. 사람을 펄펄 끓는 기름에 넣질 않나, 도살장에서 사람을 잡질 않나. 저승에서 권력과 돈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느꼈어요. 저 세상은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주더라고요.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후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어요.”

영적인 체험을 계기로 그는 권력과 돈보다 나눔이 제일이라는 가치를 품고 삶을 살아가게 됐다. 겨우 20살밖에 안 된 청년이었던 신 여사는 30원짜리 양말 두 켤레로 남을 돕기 위한 나눔의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의 ‘헬프미(Help Me)’란 별명도 손님이 붙여준 것이란다.

“사달라고 외치는데 먹고 살기 어려운 때 그러니 당연히 외면당하기 일쑤였죠. 단골이던 선생님께서 ‘‘헬프미’하고 외쳐보래요. 도와달라고 외치는 편이 훨씬 낫더군요.”

헬프미를 외치며 악착같이 힘겹게 모은 돈을 그는 8만 명에게 전했다. 그가 후원한 양아들과 딸들만 해도 200여 명. 종종 오는 감사인사는 참 반갑고 뿌듯하다. 이들 중 사짜 직업을 가진 이만해도 여럿이다. 그들에게 신 여사는 권력의 맛에 취하기보다 소외된 이웃을 돌아봐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는다.

“힘과 권력 없는 사람이 일어나지 못하는 건 옆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젊은 시절 19살밖에 안 된 고아가 유부남 꼬임에 넘어가 같이 살다 가정폭력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어요. 이웃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죠. 장사를 하면서 선거 전엔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던 이들을 보면 실망스러워요. 배지를 달고 나면 말을 바꿔요. 기관과 관공서를 찾아가면 잡상인 취급하며 쫓아내는 모습이 징그러운 유부남과 무심한 이웃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관심을 갖고 돕는다면 소녀도 지금의 어려운 이웃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남을 돕는 데 쓰는 돈을 결코 거저 주는 게 아니에요. 그 복은 저세상에서라도 반드시 돌려받으니 아까워 하지 마세요.”

유일하게 아까워하는 돈은 당신께 쓰는 돈. 그가 쓰는 돈은 한 끼 100원 남짓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먹는 끼니가 전부다. 1년에 쓰는 생활비만 고작 5만 원 남짓인데 그것조차 돕는 데 쓰지못해 아깝단다. 먹고 싶은 소고기도 소외된 이웃을 위해 그저 군침만 삼킬 뿐이다.

“돈이고 명예고 다 귀찮아요. 안 아프고 100살까지만 남을 더 돕다 가고 싶어요. 죽기 전 숯불로 구운 소고기를 1년만 먹고 죽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거 나만 배불리 먹으면 뭐하나요.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더 가치있어요.”

신초지 여사는 한 켤레에 2000원 남짓하는 양말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쓴다.
신초지 여사는 한 켤레에 2000원 남짓하는 양말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쓴다.
신초지 여사는 공로를 인정 받아 정부로부터 국민 포장을 받았다는 기사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줬다.
신초지 여사는 공로를 인정 받아 정부로부터 국민 포장을 받았다는 기사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줬다.

글·사진=김고운 기자 kg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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