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조 전 위원장

장보는 일은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의 하나였다. 요즘은 아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편이라 장바구니 물가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퇴근하는 길에 오이를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더니 1개에 2500원이었다. 오이뿐만 아니었다. 한 봉지에 2000~3000원 하던 청양고추가 4000원대로 치솟았고 상추와 시금치 같은 푸성귀들도 모두 값이 올랐다.

“요즘 과일, 달걀, 두부까지 사 먹는 건 사치 맞죠?” 얼마 전에 한 주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말을 실감하는 시절이다. 사과값이 금값이라고 언론매체는 연일 난리인데 부부 둘만 사는 집에서 과일은 손님 접대용이 된 지 오래다. 나날이 체감하는 기후 위기 앞에, 앞으로 10년 동안 사과 재배 면적이 축구장 4000개 크기만큼 사라진다고 하는 소식이 차라리 걱정스럽다.

실로 걱정은 저소득층에게 높은 먹거리 물가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를 보면 2020년 이후 식료품, 비주류 음료의 물가 상승률은 해마다 5%를 넘기고 있다. 이렇게 먹거리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면 저소득층은 쓸 수 있는 소득 가운데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라 소득분위별 식비 지출 비중을 추산하면 소득 하위 20%는 쓸 수 있는 월평균 소득(87만 8000원)의 44.3%(38만 9000원)를 식비(식료품, 비주류음료, 식사비)로 지출한다고 한다.

쓸 수 있는 돈의 거의 절반을 식비로 쓰고 나면 나머지 생활이 어떨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소득 하위 20%보다 식비로 거의 3배(116만 6000원)를 쓰는 소득 상위 20%는 쓸 수 있는 월평균 소득이 805만 7000원이다. 쓸 수 있는 소득 격차는 9.2배(87만 8000원/805만 7000원)지만 식비 제외하면 쓸 수 있는 돈이 무려 14.1배(48만 9000원/689만 1000원)로 벌어진다. 여기에 주거비, 교통비 등을 더하면 소득 하위 20%는 쓸 수 있는 돈의 75.9%를 필수 생계비로 지출하는 반면 상위 20%는 쓸 수 있는 돈의 26%만 필수 생계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저소득층은 여전히 밥 먹는 데 가장 마지막으로 돈을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적자 가계에서 벗어나는 당장의 방법은 식비를 줄이는 것이다. 밥 먹는 데 돈을 쓰지 않으려면 굶거나 같은 음식을 되풀이해서 먹게 된다. 심지어 한 끼를 쪼개어 두 끼로 나눠 먹는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그릇 밥에 이것저것 버무리고 끓여 여러 그릇을 만들기도 한다.

고물가 시대에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어떨까? 지난해 전국대학 학생회 네트워크가 발표한 설문조사(응답자 2076명) 결과를 보면, 응답 학생들의 95.1%가 ‘물가 인상을 체감한다’고 답했고 ‘체감하지 않는다’는 답은 0.3%에 불과했다. 가장 부담이 되는 지출 항목은 단연 식비(56.1%)였고, 물가 인상 때문에 밥 굶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굶고, 그냥 굶고, 자주 굶는다는 답변이 즐비했다. 하루 3끼는 비현실, 2끼는 사치, 1끼가 겨우인 일상이다.

국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견주어 우리나라 음식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말을 곧잘 한다. 빵이든 밥이든 국수든,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값은 대부분 나라가 우리보다 싸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김밥과 라면조차도 비싼 음식이 되었다.

이런 나라에서, 예전 대통령 후보는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몰랐고, 현직 국무총리는 택시 기본요금이 1000원 정도라고 답했다. 총선이 임박하자 그런 사람들이 다시 민생을 말하고 한 표 달라고 구걸하고 있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 대사를 떠올린다. 북한군 장교가 마을 촌장에게 묻는다.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 휘어잡을 수 있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촌장이 사투리로 받았다.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뭐.”

제발, ‘마이’는 아니어도 누구든지 굶지 않는 나라부터 만들자. 정치인들아, 관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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