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

그 옛날 중국은 큰 나라지만 늘 주변 나라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했다. 특히 북쪽의 흉노, 거란, 여진, 몽고, 만주족은 시대를 달리하며 중원을 위협했던 나라들이다. 북쪽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만리장성을 무리해서 축조한 것도 이들 강하고 날쌘 기마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함이다. 한나라 고조 때의 일이다. 수시로 변방지대를 괴롭히는 흉노족을 혼내기 위해 고조는 몸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다. 오랑캐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적진 깊숙이 들어가지만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에 능한 흉노 기병들의 농락에 고조 일행은 그만 포로 신세가 되고 만다. 온갖 곤욕을 치른 뒤 고조는 그들과 원치 않는 화친 조약을 맺고는 간신히 풀려난다. 막강했던 한나라가 소수민족 흉노와 굴욕적인 화친 정책을 쓰면서 흉노의 우두머리 선우(單于)에게 아름다운 여인과 막대한 예물을 바친 것이다.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에 크나큰 손상을 입은 사건이다. 이후로 한나라는 해마다 선물을 바치는 굴욕적인 외교를 펼친다. 달래기 위한 방책이지만, 흉노는 조약을 깨고 수시로 변경을 넘나들며 약탈을 일삼는다. 호되게 당한 경험을 갖고 있던 한나라는 그럴 때마다 쫓아내기만 할 뿐 전면전은 피한다.
세월이 흘러 무제가 들어서자 한나라 국력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중신 가운데 몇몇은 이번 기회에 흉노와의 화친을 파기하고 공격하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은 이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지속적인 화친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우리 군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수천 리 길을 원정하게 되면 지칠대로 지칠 것입니다. 강한 화살도 결국에는 얇은 비단조차 뚫지 못하게 됩니다. 본래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막판에 쇠약해지기 때문입니다”라는 논리로 설득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강노지말(强弩之末)’의 배경이다. 아무리 힘차게 날아가는 화살이라도 결국에는 수그러져 힘없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권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마디 호령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무한 권력도 결국에는 사그러든다. 막강한 권력이라도 십년을 넘지 못하고(權不十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을 넘지 못한다(花無十日紅)는 말도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수당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 심상치 않다. 서로를 심판하겠다며 비판, 정죄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강한 활시위를 당겨가며 상대를 위협하는 형국이다. 저러다 씻지 못할 앙금이 남을 텐데 그런 걱정은 조금도 없는 듯하다. 오래전 한 말들을 복기하며 하나하나 면밀히 따진다. 그때 그 처신, 그 말, 그 글, 그 판단이 이런 화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자들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평소 무심코 한 행동, 말, 글쓰기는 결코 자신의 가치관과 무관치 않다.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 말, 글은 모두가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다. 일상에서의 바른 가치관 함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큰일 하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이라면 애당초 바른 가치관 함양에 신경써야 한다. 선거 때 잠시 표를 얻기 위한 위장된 가치관은 오래갈 수 없고,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난다. 지도자는 갈등과 불신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위한 여유와 관용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주변의 힘들고 어려운 곳을 돌아보며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리더십이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차피 유한한 당장의 권력에 대한 심판자보다는 이 땅의 무한한 권력의 소유자 시민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사람이다.
개인적 잘잘못에 대한 심판은 법과 정의로 하면 된다. 아직도 합리적, 객관적 원칙보다는 개인적, 주관적 판단으로 함께 가야할 사회를 좌지우지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불신하며 선동하는 일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총선은 시민과 사회를 위해 낮은 자세로 봉사할 일꾼을 뽑는 선거이다. 주변을 선동하며 갈등과 대결을 유발하는 지도자보다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래서 세대-계층 간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화해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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