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가

일본 출신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1970년 ‘에너지’를 통해 ‘불쾌한 골짜기’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불쾌한 골짜기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개념적으로는 ‘이질성에서 오는 불편함’을 의미한다. 그는 로봇이 인간과 닮아갈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져 불쾌감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래프상에서 급격히 호감도가 떨어지는 구간을 ‘불쾌한 골짜기’라고 표현했다.

불쾌한 골짜기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마네킹과 인형, 로봇 등이 있다. 1988년에 개봉한 ‘사탄의 인형’에선 살인마의 영혼이 빙의된 인형 ‘처키’가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데, 인간과 비슷하지만, 이질적인 존재를 잘 표현한 영화다. 불쾌한 골짜기는 관객에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요소로서 플라이(1986), 링(1998), 아이로봇(2004), 스플라이스(2009), 애나벨(2014), 그것(2017), 메간(2023) 등의 호러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쾌한 골짜기 개념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익숙한 소재로서 밈(meme)화 되어 있기도 하다. 마사히로는 호감도가 급락하는 불쾌한 골짜기 구간을 넘어 인간과의 유사성이 한 층 높아지면 다시 호감도가 급증한다고 주장했다. 로봇이 발전하여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가상 인물이나 일러스트, CG 영상을 두고 누리꾼들이 호감도가 치솟는 그래프의 오르막 구간을 ‘대유쾌 마운틴’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밈을 만들어 냈다.

마사히로의 이론은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심리학적인 이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제로 입증된 이론은 아니다. 인간과의 유사성이나 호감도 같은 주관적인 지표를 수치화해서 측정한 것도 아니고, 통계적인 표본을 수집해 도출한 결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사히로가 ‘불쾌한 골짜기’를 언급한 것도 ‘미래에 로봇이 발달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공학자의 상상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실험에 따라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지 않는 데이터를 보이거나 로봇이나 인형에 익숙한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등 인간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엔 여전히 근거가 부족하다.

‘불쾌한 골짜기’를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이질적인 것을 두고 우리가 경계심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 사고로 신체가 훼손된 사람 또는 시체를 보았을 때 우리는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현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합성기술 ‘딥페이크(deepfake)’로 만들어진 투자권유 동영상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유명 연예인의 얼굴과 음성을 조작하여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사기 영상이었다. 눈썰미가 좋지 않은 사람이 보았을 땐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영상은 교묘했다. 홍콩 금융사에선 AI음성에 속아 340억 원을 송금한 금융사기 범죄가 일어났다. 현재 미국에선 딥페이크 기술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보고 13개 주가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모두 실제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조작된 영상과 음성에 의해 일어난 문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로 발생한 피해액이 1965억 원이라고 한다. 2022년에 발생한 피해액 1451억 원과 비교하면 35.4%나 상승한 수치다. 딥페이크나 AI음성 사기범죄로부터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많은 콘텐츠가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대유쾌 마운틴’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 음악, 코드, 영상물 등이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범죄나 사기에 대한 적색등이 켜졌다.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동영상 하나로 인해 내 얼굴과 목소리가 범죄자에게 넘어갈 수 있는 세상이다. 내 얼굴과 목소리를 복제하여 나의 가족을 속이는 범죄자를 상상해 보자.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나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한 그것이 나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문제가 생겨 도움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미래엔 ‘불쾌한 골짜기’의 골을 더 깊게 파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