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열전의 총성이 울리자마자 거대 양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을 향해 겨눈 칼끝에 심판론을 매달았다.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과 ‘이조’(이재명·조국)를 심판해야 한다고 야단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법석이다. 민생을 돌보겠다고 사탕발림해도 시원찮을 판에 누가 더 나쁜지 가려달라며 드잡이하니 어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는 심드렁하다. 감정 선동이 또다시 민심을 갈라치는 건 아닌지도 심히 우려된다.

선거운동 첫날인 28일 여야 지도부는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화력을 집중했다. 집중 유세는 시종일관 심판론을 관통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마포 지원 유세에서 “우리는 정치개혁과 민생개혁, 범죄자들을 심판한다는 각오로 나섰다”며 “이·조를 심판해야 한다. 그것이 네거티브가 아니고 민생”이라고 단정했다. 전형적인 네거티브가 왜 민생으로 둔갑했는지 그 문법에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용산역 ‘정권심판·국민승리 선대위 출정식’에서 “대한민국을 이렇게 퇴행시킨 장본인은 윤석열 정권”이라며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배반한 정권을 주권자가 심판할 때가 됐다”고 정권 심판론을 재생했다. 민주당은 4월 10일을 ‘윤석열 정권 심판의 날’로 규정하며 윤 대통령을 선거 한복판으로 소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대선의 리턴매치를 보는 듯한 착시마저 일으킨다.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게 정치의 생리인 줄은 알고 있으나 리스크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술이 너무 과격하다. 거야 심판과 정권 심판을 정리하면 거대 야당 때문에, 무능한 정권 때문에 민생이 파탄 나고 나라 꼴이 이 지경이라는 것인데 가식이라도 책임지겠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겨야 국민이 승리하는 선거라며 되레 책임을 들씌우니 정치의 낯은 언제봐도 참 두껍다.

이날 대전과 세종, 충남 후보들도 유권자와 눈을 맞추며 지지를 호소했다. 아직은 점잖고 겸손한 자세다. 심판 타령은 중앙당에 맡기고 지역 후보들이라도 공정한 게임에 임해주길 바란다. ‘저 사람은 이래서 안 된다’가 아니라 ‘내가 이래서 적임자’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공약과 비전을 갖고 대리인으로서 성심성의를 다하겠으니 뽑아달라고 간청하는 게 주권을 받드는 예의다.

이성을 상실한 감정싸움이 지배하는 선거에 휩쓸려 지역 이슈와 정책이 묻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국민의힘 한동훈 위원장이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 이슈로 띄운 승부수는 선례일 수 있으나 규제 완화를 통한 서울 개발 카드와 섞는 바람에 휘발성이 생겼다. 그토록 막아달라는 독주를 원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니 심판 타령은 그만 접고 국민 생각 좀 해 주면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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