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통적인 농업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1961년 5·16 이후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산업화되면서 지금은 농업인구가 15%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반만년 동안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산천을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마구 파헤치고, 하룻밤 사이에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높다란 콘크리트 건물들이 솟아오르는 격변시대를 맞았다.
물론, 이런 물질적인 성장과 정신혁명 없는 서구문물의 유입에 대반 반발로 자연보호운동이 확산되고, 슬로시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의 고위 정책담당자들은 개발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2012.03.21. 슬로시티 예당저수지 참조).
일제는 오랫동안 금남 지역을 연기군에 편입한 뒤 금강 변에 제방을 쌓으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을 대평리라 하고, 주민을 이주시키면서 감성리에 있던 면소재지도 대평리로 옮겼다. 그리고 이른바 신도시 건설이라고 할 수 있는 대평리에는 충청도에서 가장 큰 우시장을 세웠지만, 신도시는 1946년 대홍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금남면소재지는 다시 현재의 금남면 소재지인 용포리로 옮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라진 대평리란 지명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무튼 대전에서 세종시로 가는 국도 1호선의 오른쪽 도로변의 감성리(柑城里)는 금남면 옛 면사무소 소재지로서 감(柑)나무가 마치 성처럼 마을을 빙 둘러 싸고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지만, 지금은 감나무 대신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마을을 감싸고 있다. 나지막한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30여 농가가 들판을 향해 기다랗게 자리하고, 마을 입구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뒤 소나무 숲에는 매년 수천마리의 백로가 찾아와서 여름을 나고 있다.
감성리에 백로가 날아오기 시작한 것은 약500여 년 전부터라고 하는데, 많을 때에는 한해에 5000여 마리가 넘는 백로가 찾아와서 소나무 숲을 하얗게 덮어서 푸른 소나무 숲에 하얀 백로들이 한가롭게 앉아있는 모습은 운치를 느끼게 했다.
감성리에는 백로뿐만 아니라 잿빛 왜가리, 황로 등도 함께 날아오지만, 사람들은 백로나 왜가리, 황새, 두루미들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모두 뭉뚱그려서 학이라고 부르는데, 백로는 여름철새이고, 두루미나 황새 계통은 겨울철새이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감성리에서 백로를 볼 수 없지만, 근래에는 겨울에도 하천이 얼지 않아서 백로도 점점 텃새화가 되고 있다고 한다.
본래 백로과에 속하는 물새의 한 종류인 백로는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등이 있는데, 대개 날개 길이가 27㎝, 꽁지 10㎝가량 이다. 몸빛은 백색이고, 눈 주위에는 황백색을 띠며 긴 부리와 다리는 흑색, 발가락은 황록색인데,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백로는 약 1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백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여름철새로서 주로 소나무, 은행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산다. 먹이는 주로 연못, 논, 강가에서 물고기나 개구리를 먹이로 하며, 4~5월경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백로가 감성리에 둥지를 튼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금강에서 풍부한 물고기 먹이와 함께 백로가 좋아하는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환경여건 때문인데, 마을주민들은 백로가 많아 찾아오는 해에는 풍년이 들고 적을 때는 흉년이 든다고 하여 백로들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백로의 지저분한 배설물과 배설물의 독성으로 푸른 소나무들이 하얗게 죽어가고, 백로가 물고 가다가 떨어뜨린 물고기나 개구리 조각이 마당이나 장독대에 항상 널브러지기도 했다. 또 마을 뒷산을 올라가려면 백로의 배설물이 즐비하고 쉴 새 없이 머리위로 떨어지기 때문에 머리 가리개가 필요하고, 산란기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알과 새끼들이 부지기수일 만큼 온 주민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백로의 놀이터이던 금강은 4대 강 개발사업으로 먹이가 되던 우렁이나 물고기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마구 파헤친 논밭에는 수많은 관공서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등 지형환경이 크게 변하고, 수많은 차량이 오가고 주민들이 입주하면서 조용하던 감성리 일대에 백로가 계속 찾아오게 될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했다.
물론, 천혜의 자연환경을 찾아서 서식처를 정하는 철새들을 인위적으로 붙잡아둘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오랫동안 둥지를 치고 살았던 서식처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할 것이다. 행복도시 건설로 양화리 앞 쪽 논이 없어지면서 백로의 먹이인 미꾸라지, 개구리, 물고기 등이 없어지면서 찾아오는 숫자가 크게 줄어들 것에 대해서 당장 감성리 주변을 흐르는 금강, 계룡천, 금천천에 농업용 보를 준설하여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마을 뒷산은 잡목을 제거하여 살쾡이, 뱀 등 천적이 왜가리와 백로 새끼를 먹어치우거나 알을 훔쳐가는 걸 방지하는 노력도 소홀이 하지 말아야 한다.
파괴된 자연환경을 떠나는 철새는 어쩌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마구 파헤친 인간의 탐욕 결과 인간에 대한 엄숙한 경고라고 하겠지만, 자연과 인간의 부조화로 동식물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현장을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 목격하는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화석처럼 남아있게 될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