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아버지 손 잡고 3대가 같이 '시간 여행'

개화기~7차 교육과정 전시 ··· 100년 역사 담아내

우리가 숨 쉬고 살고 있는 지구의 퇴적암 등 암석층에 보존되어 있는 지질시대 동식물의 잔유물이나 그 특징 또는 흔적을 화석(化石; fossi)이라고 하는데, 화석의 사전적 의미는 '땅을 파다'라는 뜻의 라틴어 fodere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화석은 동식물 그 자체의 유해인 체화석(體化石)과 나뭇잎이나 동물의 피부 또는 깃털 등의 특징, 발자국이나 기어 다닌 흔적 등 흔적화석(痕迹化石)으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한반도 곳곳에서도 20억 년 전에 살았던 공룡과 같은 거대동물의 발자국 등 흔적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생물학적 화석은 우리의 현재와 직결된 것이 아니어서 그다지 실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우리 주변에는 화석과 같은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어도 불과 한세대 전에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한자와 한자로 작성된 책자나 문서들조차 언제부턴가 한글전용으로 인해서 한글세대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못하는 낯선 화석처럼 받아들여져서 역사의 단절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역사에 관심과 흥미를 잃기 쉬운 한글세대에게 우리가 직접 보고 겪었던 교과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한곳에 모아놓고 전시하고 있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있다.

교과서 박물관 입구
세종시 조치원읍에서 경부고속도로 청원나들목으로 통하는 길목인 연동면 내판리 응암농공단지에 교과서박물관이 있다. 교과서 박물관은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우리나라 교육문화 발전사를 한눈에 살펴보고, 미래의 한국 교육발전을 책임진다는 이념으로 설립한 대한교과서(주)가 2003년 회사의 부속시설로 교과서박물관을 개관한 곳이다.
당초에는 서울 대방동에 있던 공장과 시설을 응암농공단지로 이전한 이후 초·중·고교의 교과서를 인쇄하다가 건물 한 개 동 전체를 박물관으로 개편했는데, 연동면 응암농공단지에 이르면 도로변에 교과서박물관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회사 구내로 들어서면 왼편의 첫 번째 2층 건물 전체가 교과서박물관인데, 약1030평 남짓한 박물관에는 초·중·고 각종 교과서를 비롯해서 책을 인쇄하던 인쇄기 등 무려 18만여 점에 이르는 교과서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외형이 너무 크거나 색다른 기계들은 박물관 입구 좌우의 잔디밭인 야외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교과서 변천과정 전시 모습.
넓은 주차장과 입장료도 없는 박물관에 들어서면 1층 왼쪽부터 순서대로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게 꾸몄는데, 제1전시관에는 교과서와 교과서를 만드는 인쇄기, 제본기 등 하얀 종이에 검정글씨와 울긋불긋한 그림과 사진이 한권의 책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가 서당에서 배우던 서책과 구한말 개화기의 '교과서'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교과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의 전자책까지 다양한 교과서가 질서 있게 전시돼 있다. 한자로 만들어진 책도 일부 있지만, 1950~60년대 우리의 초등학교 교실을 그대로 재현한듯 책상과 걸상, 그리고 칠판과 오르간까지 교실에 그대로 옮겨놓은 [추억의 교실] 모습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 가장 인상적이다.
사실 대한교과서(주)는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이외에 국내 최장수 문예지인 현대문학(現代文學)을 발행하는 현대문학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많은 도서를 출간한 자료도 전시하고 있고, 또 외국의 각종 교과서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북한에서 가르치는 북한의 교과서도 전시하고 있어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추억과 함께 우리의 교과서와 좋은 비교가 되도록 했다.
특히 대한교과서(주)는 회사에서 직접 출간한 책의 역사가 곧 우리나라의 출판역사라는 자부심 아래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친필 이력서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모 TV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출품되어 감정가 300만 원으로 평가된 국내에 3권밖에 없는 '바둑이와 철수'라는 교과서도 전시하는 등 우리의 지난 추억을 되살리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
더욱이 교과서 생산 공장 내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이점으로 교과서를 직접 만드는 모습도 체험해 볼 수 있다.

교육과정 변천사 전시 모습.
2층에는 대한교과서(주)의 새 이름인 ‘미래 엔’의 홍보관이라고 하지만, 국내 유일의 교과서라는 전문 주제로서 100여 년 전 개화기의 교과서부터 2000년대 제7차 교육과정기의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과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즉, 제1차 교육과정(1954~1963)은 우리의 현실생활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생활중심의 교육과정이었으며, 제2차 교육과정(1964~1973)은 5.16. 이후의 국가정책 지표를 강조하듯 자주성, 생산성, 합리성을 실현하기 위한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구현에 중점을 두었으며, 제3차 교육과정(1974~1981)은 국민적 자질함양과 인간교육의 강화, 지식기술의 쇄신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강조하고, 유신시대를 지난 1980년에 시작된 제4차 교육과정(1981~1988)에서는 교육정상화를 위한 교육개혁의 추진으로 건전한 심신을 육성하고 지식과 기술의 배양, 도덕적인 인격의 형성을 강조하였으며, 제5차 교육과정(1989~1992)에서는 ‘1교과 다교과서제’를 채택을 하면서 통합교육을 강조했는데, 제6차(1992~1997)에서는 21세기를 주도할 건강하고 자주적이며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한국인 육성에 중점을 두었던 역사를 알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제7차(1997~ )는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한 학생 중심의 수준별 교육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건국이후 현재까지 7차에 걸친 교육과정에 따라 변천된 교과서와 참고서 등을 전시한 옆에는 그 시대의 남녀 학생복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등 단순히 교과서의 시대적 변화과정을 감상하는 이외에 체계적인 학술연구도 가능할 만큼 자세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교복을 전시한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학생모습을 마네킹이나 당시의 학생들 사진을 크게 확대한 것으로 보여주었다면 훨씬 더 실감이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60년대 초등학교 교실 모습.
2층 홍보관의 복도 양쪽 벽에는 관람객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교과서의 그림과 내용이 큼지막하게 전시되고 있는데, ‘미래 엔’ 홍보관 옆의 인쇄기계 전시관에는 우리나라 근대 인쇄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온갖 인쇄기계가 전시되어 있다.
교과서박물관은 개인 출판사와 그 회사가 출판했던 인쇄물의 홍보에 그치지 않고, 우리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출판문화와 함께 우리가 잊고 지낸 역사를 깨우쳐주는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에게는 바로 한세대 전에 자신들이 체험했던 학생시절의 추억을, 그리고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의 탄생과정을 알려 주어서 온가족이 함께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와 비슷한 박물관으로 1992년 7월 대전시에서 삼성동 네거리에 있는 삼성초등학교의 교사 일부를 한밭교육박물관으로 개편해서 초등학교의 교과서를 비롯한 책·걸상 및 교·자재를 전시하고 있지만, 교과서박물관은 보다 종합적이고 망라적인 초·중·고교생의 교과서와 교육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녀들과 함께 찾아볼 수 있는 훌륭한 교육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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