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철
홍성보훈지청 보훈과장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이나 충격적인 과거의 일 등을 뇌의 깊은 곳으로 이동시켜 망각의 수준에 이르게 한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하는 이유다. 망각도 하나의 커다란 능력이다. 나쁜 기억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뭔가를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만 개를 새로이 만들기도 한다. 부끄럽고 괴로웠던 일들이 잊혀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면 힘들겠지만, 우린 너무 자기 편의적으로 좋은 것만 기억하며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말하지 않아도 사노라면 잊어서는 안 될 게 많다.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한다. 고속성장을 이뤄 외국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인데 정작 한국인만 모른다. 자기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주변 강대국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잊고 산다. 세계 유일 분단의 안보위험국이고, 주변국 중 유일하게 핵이 없음에도 개의치 않는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해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등의 무력도발을 해도, 사회저변에 친북세력들이 들끓어도 당시만 번쩍할 뿐 시간이 지나면 곧 잊힌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 겪어야만 했던 아픈 역사도 잊고 산다. 1910년 일본의 한 화가는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을 닭들이 ‘여름 파리떼’처럼 서로 싸우고 있는 닭장으로 그려 풍자했다.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는 싸움이 아닌 국내 권력 다툼, 그 권력도 조만간 송두리째 일본에 날아갈 판인데도 우리끼리 싸웠다. ‘적 앞에 분열은 우리를 잡수시오’임을 알면서도 잊는다. 매일 레테의 강, 망각의 강물을 마신다.

지난날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되밟지 않고 대한민국의 영속과 영광을 위해 기억하며 살아갈게 많다. 먼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인 국민대통합을 기억하고 이뤄지길 소망한다.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분열의 폭을 좁히고 북한과의 관계개선도 이뤄져 화합과 통일의 향기가 온 누리에 스며들기 바란다.

둘째, 최근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반도에 전쟁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응답한 국민이 전체 10명 중 8명이었다. 2012 국방백서에서도 우리군의 전투력을 북한군의 80%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처럼 북한의 군사력은 생각보다 강해 안보위협이 상당하다. 우리의 경제·과학기술 수준은 북한보다 월등하지만 미사일 기술은 뒤진다. 우리의 나로호는 지난 1월 30일 3차 발사에서 성공했지만, 북한은 우리보다 앞서 미사일 발사에 성공해 세계 10대 로켓발사국(우주클럽)이 된 바 있다. 그리고 한국을 둘러싼 북한·중국·러시아는 핵 보유국이고, 일본도 핵 잠재 보유국이다. 반면 한국만 무핵(無核)국으로 핵 억지력이 없는 상황도 유념해야 한다.

셋째, 최근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은 대단하므로 대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이 말은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반기문 유엔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나란히 단상에 오르자 이를 본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레테의 강을 뒤로하고 분열의 강을 건너야 한다.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지역, 계층, 세대 간의 갈라진 강을 건너 통일과 선진의 언덕으로 올라가야한다. 우리에겐 선택의 폭이 그리 많지 않다. 국력과 역량을 쌓아야 한다. 군사력·경제력 등의 외연의 확장과 함께 나라사랑과 국민통합 등 내연의 확장이 동반돼야 한다. 내연의 확장은 국가보훈의 가치를 키우는 것이므로 ‘국민대통합’은 국가보훈에서 출발하게 된다. 새 정부의 또 하나의 어젠다인 ‘국민행복시대’를 열기위해 경제 민주화, 고용 창출, 복지 확대, 한반도 평화 등을 외치지만 이 또한 나라의 보훈이 바로서지 못하면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된다. 이런 점이 국가보훈처가 민족정기를 선양하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이유다. 새 정부가 국가보훈의 가치에 귀 기울여야하는 이유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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