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의 심화 속도가 가파르다. 상하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는 비판과 완충능력이 탁월한 중산층이 두꺼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늘 불안하다. 민생을 외면하고 오로지 재벌과 대기업만 챙긴 MB정부의 실정으로 한국의 정치전망은 더더욱 시계 제로이다.
중산층의 선택이 국가의 존망을 가른다. 한국에서 세대갈등과 이념갈등, 계급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중도세력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이란 자본가(부르주아)와 노동자(프롤레타리아), 두 계급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간계급(프티 부르주아)으로 중산층의 증가는 곧 사회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너무도 절망적이다. 상하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상하갈등을 조절하는 허리가 부실하다. 건강한 중산층이 건전한 정치적 중도세력이 된다. 중산층이 줄면 정치적 중도세력도 따라서 줄어든다. 일제식민시기와 반공독재세력이 강점한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 정치적 중도세력이 몰락하였다. 흑백논리에 함몰된 정치와 이념적으로 보수 편향된 언론의 부추김으로 국민은 극좌와 극우로 양분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반목과 질시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흑백논리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중도는 좌우 모두에게 일방적인 구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회색분자로 간주되며 매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이제는 좀처럼 중도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중도의 길을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념적 경도가 너무 심하여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합치점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반도에 위치한 우리 민족은 외부세력의 잦은 침입과 강점으로 항상 충성과 반역, 애국과 매국, 백과 흑,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천손민족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민족을 선택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 애국세력도 결코 작지 않지만, 외부 세력을 물리치고 나면 침입세력에 빌붙어 힘을 키운 사람과 그 후손은 지배자가 되고 치열하게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과 그 후손은 피지배자로 전락했다. 외세의 강점과 해방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치는 자연스럽게 매국세력과 애국세력으로 양분되고, 국민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음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흑백논리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애국이냐? 반역이냐?”로 시작된 논쟁은 자연스럽게 “맞느냐? 틀리냐?”로 분화되어 모두에게 굴레가 되었다.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2030세대와 5060세대의 갈등을 보라. 50대의 몰표가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켰다는 사실에 흥분한 2030세대는 5060세대가 박정희 신드롬에 빠져 악수를 둔 것이라고 하고, 5060세대는 2030세대가 부모세대가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발전의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종북세력의 거짓 이념에 속아 5060세대를 매도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흑백논리의 극복이 세대갈등, 이념갈등,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다. 시비곡직을 가려 자기의 의견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본질이지만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과 강점을 거치는 동안 본질을 잃고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처세술로 살아가거나 매판세력에 부화뇌동하여 흑백논리로 세상을 농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2030세대와 5060세대는 다를 뿐이지 어느 쪽이 틀린 것이 아니다. 살아온 시대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고, 앞으로 살아야 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해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호불호의 감성도 다를 수 있다. 세상에 표출되는 현상을 흑백논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2030세대가 진보주의를, 5060세대가 보수주의를 택한 것도 서로 다를 뿐이지 누가 틀린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정치가 흑백논리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보듬어야한다. 이것이 통합의 시대를 여는 첩경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