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목원대 교수

일제 강점기, ‘아리랑’(나운규)과 같이 고된 식민의 시련을 다독여 준 조선영화가 있었다. 물론 친일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많았고, 실제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관람했던 관객은 전체 조선인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문연재소설이 그러했고, 국극이 그러했듯이 영화를 포함해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왔다. 사실 대중문화의 기능이란 현실사회 도처에 널려 있는 모순을 상상의 차원에서나마 해결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것은 아마도 대중문화에 요구되는 몫이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영화는 대규모의 자본이 투자되는 만큼 의외성보다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서 재미와 감동을 주도록 기획되곤 한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험적 투자는 그에 따르는 손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이야기의 규칙이 존재하듯, 대부분의 한국영화에도 일정한 공식이 생겼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를 적당히 섞는 관습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타워’와 같은 재난영화에 소방대장의 눈물겨운 아내 사랑과 희생, 청소부 엄마의 절절한 사연이 있는가 하면, 긴급한 상황 사이사이에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코믹한 장면이 끼워져 있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박수건달’(조진규)과 ‘7번방의 선물’(이환경)도 다르지 않다. 과거 ‘조폭마누라’를 연출했던 감독은 ‘박수건달’에서 조폭과 박수무당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섞어 코미디에 액션을 보여주는 동시에 죽은 영혼들의 스토리를 통해 감동까지 낚아채는 영리함을 발휘한다. 무당이 된 조폭은 죽음이라는 절대 조건을 사이에 두고 폭소 속에서 젊은 연인의 사랑을 증명하며, 어린 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싱글맘의 눈물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되돌아보라고 설득하느라 매우 분주해 보인다.

‘7번방의 선물’은 여기서 더 나아간 듯하다. 장애자로 마트 주차장에서 일하는 용구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딸 예승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꼭 사주고 싶은 아빠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살지만 행복하기만 한 그에게 어느 날 경찰청장 딸을 성폭행하고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난데없는 혐의가 씌워지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쯤이면 ‘도가니’(황동혁, 2012)를 뛰어넘는 사회성 드라마로 흘러갈 만한데, 이 영화는 그가 수감된 교도소 7번방에 딸을 데려와 짧은 행복을 맛보는 판타지로 변신한다. 사기에 폭력까지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는 감방 동기들이 이 과정에서 긍정과 치유의 선물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지적 장애인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용구가 보여주는 막무가내의 순진함과 동료들의 캐릭터는 익숙한 웃음을 자아내고, 딸을 향한 용구의 절대적 사랑은 감동을 준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또 하나의 인기 장르인 스릴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추구하는 웃음과 감동이 어딘가 위험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있다. 확증도 없이 약자를 범법자로 몰아가는 현실에 대한 질문은 있지만 그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딸을 잃은 경찰청장은 스스로 법의 수호자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용구에게 자신의 상실감과 분노를 투사한다. 사법연수원의 연수생이 된 용구의 딸 예승이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모의재판에서 무죄를 증명한 것이 그나마 정의의 실현일까?

끔찍할 만큼 부당했던 현실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의 놀라운 테크닉! 물론 영화는 꿈의 공장에서 만든 상품이다. 그러나 용구와 같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빠가 딸을 지키려 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할리우드 영화 ‘아이 엠 샘’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꿈을 보여주되, 현실과의 개연성 안에서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의 윤리를 모색함으로써 꿈에 도달하고자 분투한다.

영화에 나오는 비틀즈의 음악조차 1960년대 대안적 문화운동으로서 히피문화가 전파하고자 했던 공동체의 윤리를 떠올리게 하는 정교한 매개이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고단하지만 쉽게 판타지로 후퇴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고단함이 결국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영화가 가끔은 웃음과 감동 대신,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를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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