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대전시 경제정책협력관

有朋(유붕)이 自遠方來(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낙호)아!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는 동지와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다.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함께 인생을 사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다’라는 뜻이다.

또 인심제 태산이(人心齊 泰山移 사람의 마음을 모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지혜와 뜻을 모으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진(秦)나라 때 법치국가의 기틀을 세운 명재상 ‘상앙’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법률을 제정해 놓고 백성이 이를 잘 따라 줄지 의문이 들어 생각에 빠진다. 고민 끝에 남문(南門)에 길이 3장(三丈)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北門)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오십금(五十金)으로 상금을 올렸더니 옮기는 사람이 나타났고, 약속대로 즉시 오십금을 줬다. 그리고 나서야 만들어 놓은 법령을 공포하니 백성이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모든 일에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신뢰(信賴)와 관련 있는 논의의 틀로 요즘 주목받는 것이 사회적자본(社會的資本 Social Capital)이다. 이는 ‘개인 간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無形)자산’을 말한다. 이에 대한 시대적 흐름을 열어놓은 사람은 다음의 두 석학들이다.

먼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소 양극체제의 붕괴와 함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으며 “그럼, 그 다음은 사회적 자본, 즉 신뢰(Trust)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도 했다. 타인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고신뢰(高信賴)’ 사회가 돼야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또 한사람은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다. 그는 2000년에 쓴 그의 저서 ‘나홀로 볼링’에서 미국 사회에 혼자 볼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했다. 그것은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 줄어들고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는 증거라는 것. 이와 관련,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 구성원들을 연결시켜주는 결속자본으로, 물질자본과 인적자본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국가자본이란 것이다. 사회자본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자발적 연대 또는 사회적 연결망이며 신뢰와 도덕심을 자라나게 하는 메커니즘이자 민주주의의 성공을 가져오는 핵심요인이라고 퍼트넘은 설파했다.

이런 대목에서 올해 대전시가 전국 최초로 사회자본 관련 조례까지 제정하면서 사회자본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말하는 국민행복시대의 대통합 핵심이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사뭇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이기적 ‘합리성’에 치중해 온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본이 하나의 시대적 조류이자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 강물처럼 흘러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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