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청춘 태극 소녀들이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타전한 승전보의 감흥이 오롯하다. FIFA 주관 대회에서 대한민국 역사 상 최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128년 축구사를 새로 썼다는 평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보여준 끈기와 열정은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체력이 고갈돼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공을 좇던 모습은 감동을 넘어 차라리 눈물겨웠다. 척박하다 못해 황무지에 가까운 환경을 딛고 기적을 일군 어린 영웅들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그리고 미안하다.소녀들이 이름도 생소한 멀고 먼 중남미 트리니다드토바고로 향할 때 응원가 한 자락이 아쉬웠다. 뉴스 귀퉁이에서 U-17 여자 월드컵 대회가 열린다는 단신이 선전을 당부하며 배웅을 했을 뿐이다. 예선을 통과하고 8강, 4강 고지를 넘을 때까지도 프로축구, 프로야구 전적을 소개한 뒤 간추린 소식 정도로 취급됐다. 결승에서 그것도 숙적 일본과 숙명의 대결을 벌이게 됐으며 ‘여민지’라는 걸출한 선수가 트리플크라운(우승, 득점왕, MVP)을 노린다는 등등의 그럴싸한 양념을 섞어가며 그제 서야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세계를 제패한 순간부터는 침이 마르도록 온갖 추임새로 도배질을 해댔다. 우리가 언제 비인기종목의 굴레를 씌워놓고 외면했느냐는 식으로 연일 찬사 모둠을 쏟아냈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과 애정 어린 관심이 절실하다고 앞다퉈 걱정을 해댄다. 환호와 열광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풍자를 토하던 한 코미디 프로가 연상된다. 단호하고 냉소적인 구절이 음지에서 꿈을 좇은 태극 소녀들의 설움 그 바코드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수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스타 만들기에만 집중됐다. 별 관심 두지 않다가 소위 뜨니까 일기를 단독 입수했느니 선수로서의 자질도 트리플크라운 급이라느니 연신 설레발을 친다. 더욱이 축구는 11명이 뛰는 경기다. 아무리 실력이 군계일학이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월드컵 본선에 오른 팀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10명을 들러리 세우는 경향도 그렇거니와 어린 선수들을 등급 매기 듯 하는 태도도 영 글러먹었다.미증유의 월드컵 축구 우승이 아니었다면, 트리플크라운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열광했을까 공연히 트집을 잡아본다. 쓸쓸히 대장정에 오르지 않게 했다면, 선전을 염원하며 격려를 보냈다면 어린 딸들에게 덜 미안하지 않았을까 반문해본다. 인기는 신기루와 같다고 했다. 원체 근본이 부실한 여자축구는 그럴 개연성이 더 높다. 승리에 도취돼 잠시 잠깐 환호성을 지르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가 그래서 쉽다. 침이 튀도록 늘어놨던 걱정들, 예를 들자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황금세대들을 제대로 육성해 성인 여자 월드컵의 재목으로 쓰자는 등의 제언들이 흐지부지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태극 소녀, 그들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계급과 계층이 선명하게 관통하는 우리 사회에서 개천은 더 이상 용을 잉태할 수 없는 불임상태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부귀와 명예는 세습된다. 아무리 발버둥질해도 뱁새와 황새의 보폭은 갈수록 커진다. 개천의 건천화가 지속되는 한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수정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여자 축구의 현실은 태생부터 건천에 가까운 개천이었다. 말로는 수량이 풍부하게끔 물을 댄다고 하는 데 썩 믿음이 가질 않는다. 정부의 정책과 위정자들의 사고가 그렇다. 친서민 정부라면서 대놓고 부자 감세를 감행하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한다면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시키지 못해 안달이며, 소외받는 사람들을 구제한다면서 복지예산을 줄이는 식이다. 치수, 경제활성화 등을 명목으로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 중인 4대강 사업 역시 생태계 파괴와 대기업 배불리기 논란에 휘말려 있다. 막대한 예산이 신음하는 개천이 아닌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음지에 드는 주먹만 한 볕은 틀어막고 양지에 고단백 양분을 지급하는 꼴이다. 사정이 이런대도 용(龍)이 난다면 그 개천이 용할 뿐이다. 음지가 양지돼 온누리에 볕이 드는 건강한 사회, 개천에서 난 용을 사련(思戀)해야 하는 세태가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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