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의 계략으로 조휴가 죽다.(3)

주방의 계책으로 조휴가 패하고 죽자 육손이 계책을 내었다.
“전하! 이때를 맞추어 우리 동오가 촉한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사자를 제갈공명에게 보내어 동맹을 맺도록 하십시오. 옛날과 같은 화목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동오가 사는 길은 위국과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촉한과 힘을 합하여 위국의 침노를 막는 것이 상책인가 합니다.”
“그렇소. 경의 말이 맞소. 사람을 촉한으로 보내어 화합하도록 하시오.”

손권이 육손의 계책을 받아들이자 사자가 오고 가고하여 결국 동오와 촉한의 밀월시대가 열리었다.
촉한 건흥 6년 가을 9월. 위도독 조휴가 육손에게 크게 패하고 괴로워하다 결국 등창이 터져 죽었다. 위왕 조예는 칙령을 내려 조휴를 후하게 장사 지내주었다. 조휴의 장례가 끝나고 며칠 후 사마의가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다. 여러 장수들이 사마의에게 묻기를
“조도독이 패한 것은 사마원수와도 관계가 있는 일인데 어찌 급히 회군하였소?”

“우리 군사가 패한 것을 제갈양이 알았으니 허한 틈을 타서 장안으로 쳐들어 올 테니, 그리되면 누가 제갈양을 대적하겠소? 그래서 내가 급히 돌아온 것이오.”
여러 사람이 사마의가 겁을 집어 먹고 그리한다고 비웃으며 헤어졌다. 삼국의 정세가 숨 가쁘게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측치 못한 소치이리라.
동오 손권은 촉국에 사신을 보내 위국을 치자고 주문했다. 주방의 계략으로 조휴를 망하게 했다고 전했다. 후주는 손권의 친서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한중으로 사람을 보내 친서를 공명에게 전했다.

이때 공명은 심혈을 기울여 강병을 기른 탓에 말은 살찌고 군사는 기운찼다. 둔병한 군사를 영농에 투입하여 충분히 군량미를 확보하고 군수물자도 넉넉히 갖추었다. 그래서 출사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때 동오에서 보낸 친서가 도착했다. 공명은 친서를 받고 홀로 중얼거리기를
‘동오가 함께 연합작전으로 위국을 도모하자는 말이지. 육손과 주방이 조휴를 넘어뜨렸단 말이지. 헌데 저들은 사마의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구나! 나의 고민은 쥐새끼 같은 사마의인데...’

공명은 친서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기어 한 동안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늬바람이 살갗을 간지럽게 하며 지나갔다. 파란 하늘가에 외롭게 기러기 한 마리가 울고 갔다. 공명은 기러기를 바라보면서 문득 마속을 떠 올렸다.
‘마속! 어쩜 저 외기러기처럼 그대의 영혼은 외로울 거다. 그리도 나를 좋아했는데 그대를 먼저 보냈어. 나의 잘못이야. 선주께서는 그대를 바로 보시었는데 내가 그대를 너무 큰일을 맡긴 게 잘못이었어. 미안하이. 내 앞으로는 이런 가슴 아픈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한번으로 족해. 자네를 희생시킨 것으로 충분하단 말이야. 으흐흐흑.’

공명은 애간장이 타들어 가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날 밤 공명은 다시금 일어설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다음 날 연회를 베풀고 모든 장성을 모아 출사할 것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회오리바람 한 줄기가 북으로 부터 불어오더니 뜰 앞에 선 백년 묵은 소나무를 안고 돌아 와지끈하고 부러뜨렸다. 이를 본 장졸들이 놀라하는데 공명은 곧 산통을 꺼내어 점을 쳐 보았다.
‘이 바람은 한 사람의 대장을 상할 것이다.’

공명이 점괘를 말하자, 믿는 사람이 없고 연회석에 돌아가 술을 마시고 즐기는데 조통과 조광이 찾아왔다. 공명은 이 두 청년을 보자 술잔을 땅에 떨어뜨리며
“아앗! 자네들이 웬일이야? 춘부장은 무량하신가?”
공명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 둘은 자룡의 장자와 차자였다. 그래서 공명은 자룡의 안위를 물은 것이다. 물론 점괘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통과 조광은 공명의 말에 대답치 않고 엎드려 아프게 울었다.

“이 사람들아! 웬일로 울어? 어서 말해 보게.”
“아버님께서 지난밤 3경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자룡이 죽다니 나라에 큰 대들보가 꺾이었구나! 나는 오른 팔을 잃었어.”
부음을 들은 장졸이 모두 울었다. 공명은 두 유자에게 성도로 가서 후주를 뵈라 이르고 자룡의 죽음을 애도했다. 후주는 자룡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말하기를
“짐이 어릴 적 자룡이 나를 구해 주었다. 이 은혜는 백골난망이다.”

곧 조서를 내려 대장군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순평후라 내리고 성도 금병산 동편에 장사 지내고 사당을 세워 사시로 제향을 받들게 했다.
상산 조자룡이 죽었다는 부음을 듣고 시인이 시를 지어 조상했다.
‘상산땅에 범 같은 장수가 있었다./ 슬기와 용맹이 관우와 장비 같았다./ 한수 싸움에 큰 공을 세웠다./ 아두를 품에 품어 이름 석 자 찬란하다./ 어린 주인 구해 낸 한 생각은 선주를 향한 대답이네./ 청사에 빛난 충과 열은 백세에 아름다움으로 길이 전하리./’
후주 유선은 옛정을 생각하여 자룡을 후장하고 조통을 호분중랑장 조광을 아문장을 삼아 무덤을 수직하게 하니 크게 감사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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