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 왕쌍을 한칼에 베다.②

위장 장호는 매복한 촉병에게 당한 악림의 외치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도주하게 되었다. 미리 매복해 있던 오의와 오반의 군사에게 얻어맞은 것이다. 촉군은 공명의 예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조진과 손예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하지만 공명은 이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양의를 불러 명하기를
“그대가 진창으로 달려가서 위연에게 한중으로 회군하라 이르오.”

“승상!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승리를 거두었는데 오히려 물러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위연의 군사만 회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한중으로 돌아가야 하오.”
“승상! 어이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군이 사기가 왕성한데 왜 하필 이때 돌아가야 합니까?”

“깊이 생각해 보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물러갈 가장 좋은 기회요. 위군이 싸우기를 피하고 지구전을 쓰는 것은 우리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는 모두 전멸하게 되오.”
“아무리 그럴지라도 이기고 물러가는 것이 너무나도 애석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겼다 하나 적의 시체를 뜯어먹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오. 지고 나서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책을 세우고 물러가니 애석할 것 없소.”

“승상! 너무 의외의 일이라 번거롭게 해드렸습니다. 최선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그래, 고맙소. 위연은 사람을 보내 계교를 알려주어도 곱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오. 이 기회에 적장 왕쌍을 위연의 손으로 거두게 해 보일 것이오.”
“승상의 깊은 뜻을 이해하겠습니다. 지금 곧 진창도구로 가서 위연에게 승상의 뜻을 사실대로 전하겠습니다.”

양의를 설득하는데도 공명은 쉽지 않았다. 양의 말고도 철군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관흥과 장포 같은 청년장수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철군을 반대했다. 그러나 공명의 철군 결심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날로 군사를 분산시켜 한중으로 보내며 명하기를
“이제 우리 군이 행군함에 있어 뒤를 따르는 진이 선봉이 되고 선봉은 후진이 되라. 이렇게 변해야 우리는 위병을 물리치고 무사히 철군할 수 있을 것이다.”

공명은 금고수 만을 영채에 남겨서 여느 때와 같이 시각을 알리는 북을 치게 했다. 공명은 일주야 동안에 군사를 모두 빼내었다. 참으로 삼베 바지에 방귀 빠지듯 새어 나간 촉군이었다.
이때 위군 대도독 조진은 연전연패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밝은 달을 바라보며 무상한 세월을 원망하였다. 달빛이 조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한 순간 빛나게 하였다. 유난히도 밝은 달이 한 평생 전장에서 풍찬노숙하며 살아온 조진을 보듬어 주는 것일까? 조진은 큰 지모는 없는 사람이지만, 조씨 가문의 자제로 한 때는 잘 나가던 장수였다. 그러나 요즈음 공명에게 너무나 시달리다 보니 맥이 빠져 있었다. 더구나 사마의가 잘 나가니 비교가 되어 괴로웠다. 사마의는 싸우면 성공하고 조진은 싸우면 실패하니 참으로 괴로웠다. 조진은 밤새워 안타까운 가슴을 어루만지다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영채 안에서 근심에 싸여 있을 때 갑자기 좌장군 장합이 군사를 거느리고 찾아 왔다. 조진은 장합을 반갑게 맞이하여 장막으로 들어가
“좌장군! 구원병을 바라지 않았는데 어찌 군사를 거느리고 오시었소?”
“성지를 받들어 전황도 살필 겸 왔나이다.”
“성지라...! 허면 사마중달은 만나고 오시었소?”

“도독! 순전히 사마중달의 의견으로 왔나이다. 중달이 말하기를 우리가 승리하면 촉병은 머무를 것이고 우리가 패하면 촉병은 철수할거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패했으니 공명은 어떤 행동이던지 취했을 것입니다. 도독께서는 제갈양의 행동을 탐지해 보시지요?”
“알겠소. 지금이라도 알아봅시다. 내가 그 동안은 지난번 패전의 후유증을 치유하느라 정황이 없었소.”
조진은 그리 변명하고 정탐병을 내어보내 공명의 동정을 알아오게 했다. 그런데 정탐을 갔다 온 보고가 이상하였다. 전혀 예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공명의 진지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빈 영채에 수십 벌 군기만 펄럭이고 있었다. 철수한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조진은 한발 늦은 것을 한탄했으나 이미 흘러가 버린 강물이나 진배없었다.

한편 위연은 공명의 밀지를 받고 그날 밤 2경 때 군사를 거두어 영채를 버리고 급히 한중으로 향했다. 왕쌍의 첩자들이 이 사실을 감지하고 왕쌍에게 알렸다. 왕쌍은 기회가 찾아 왔다고 믿고 급히 대군을 몰고 위연의 군대를 추격했다. 3십여 리쯤 쫓아가자 위연의 기호가 보였다. 왕쌍은 큰소리로 호령하기를
“이놈 위연아! 어디로 내빼느냐? 도망치지 말고 거기 서라!”
위연은 호통소리를 못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달아나기에 바쁘다. 왕쌍은 말을 채질하여 급히 위연을 쫓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위연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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