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本心本太陽昻明(본심본태양앙명)’에 대해 보겠다. 직역하면 ‘본심(本心)은 큰 빛에 근본을 하여 높고 밝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천부경의 심성론이다.

앞에서 본 천부경에서는 ‘하나’ - ‘삼극’ - ‘우주조화’로 이어지는 우주론을 전개시켰다. 이 문장에서는 이를 이어 인간의 심성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결국 인간의 ‘속 씨앗’인 ‘마음’이란 것에 관심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천만가지 이론을 설파해도 우리의 ‘속 씨앗’인 마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그 설법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다행히 천부경에서는 인간이 가진 심성의 세계를 간단명료하면서도 그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本心本太陽昻明(본심본태양앙명)’에서는 마음의 근원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은 또한 마음이 지향해야 할 길을 암시하기도 한다. ‘본심(本心)’은 ‘뿌리마음’으로 ‘참 마음’을 말한다. 이 마음의 근원은 바로 ‘큰 빛[太陽]’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의 첫걸음이다.

‘큰 빛’은 높고 밝으니, 이것이 곧 ‘하나’의 세계요 이것이 곧 기(氣)의 근원이다. 만물은 모두 ‘하나의 기’에서 유출된 것이다. 사람의 몸은 물론, 사람의 마음도 또한 기로 이루어졌다. 몸은 거친 기요, 마음은 미세한 기이다. 모든 기는 빛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음과 몸, 더 나아가서는 기로 된 만물은 모두 빛을 근본으로 삼았고 그 속성 또한 빛이다. 어느 한 곳, 어느 한 순간도 그 본질이 빛이 아닌 적이 없었건만, 사람이 모른 뿐이다. 우리는 영원한 빛이기에 사실은 일찍이 태어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빛의 모양 그대로 일뿐이다. 다만,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스스로 환상 속에서 갖가지 고락을 느낄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자면 반드시 이 사실을 먼저 자각해야 할 것이다.

마음공부의 다음 단계는 ‘하나의 빛’을 찾아 느끼고 활성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자(朱子)가 말한 ‘함양공부(涵養工夫)’와 같은 것이니, 세간에 이른 바 ‘명상공부’이다. 자기 속의 빛을 찾아가면 ‘하나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하나의 세계’는 어떤 영토를 갖춘 특별한 나라가 아니라, 다만 기의 근원일 뿐이다. 모든 것이 기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 아닌가. 마음이 기이고 기가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면 기가 다스려지고 기가 다스려지면 마음도 다스려진다. 흐트러지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면 기도 따라 안정이 된다. 마음과 기가 안정되면 부지불식간에 빛이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몸의 세포도 우리의 인생도 밝아져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본심을 가졌고, 그 본심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간다. 사람에게 본심 밖에 또 다른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본심이 육체적 욕구를 위시한 명예욕, 권력욕, 재물욕 등에 현혹됨으로써 자기정체성을 망각해버린다. 이로써 삶이 통제되지 않아 심리적 갈등과 불화는 물론, 삶 또한 뒤엉키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본심이 제 기능을 다하여 바르게 판단하고 적절히 조절하는 삶을 산다면, 그 순간 바로 빛의 삶은 실현된다. 그래서 『서경(書經)』에서는 “오직 정밀하게 본마음을 살피고 오직 한 결같이 본마음을 지켜야 진실로 조화로움[中]을 잡을 수 있다(惟精惟一 允執闕中).”라 한 것이다. 이것은 주자가 이른 바 ‘성찰공부(省察工夫)’와 같은 것이다.

성찰공부는 자기를 살피는 공부이다. 식색의 욕망, 희노애락, 부귀공명 등의 인간사의 모든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정신을 차려 절도에 맞게만 취한다면 그것이 바로 중용이요, 거기에 바로 빛이 서려 있다. 그야말로 ‘체(體)와 용(用)이 둘이 아니요 본(本)과 말(末)이 일체이다’라는 것이다. 우주만물의 온갖 현상 속에 이미 ‘하나의 빛’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현실세계를 떠나 저 높은 곳에서 따로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자(莊子)는 ‘도무소부재(道無所不在)’, 즉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라 하고, 화엄학(華嚴學)에서는 ‘이사무애(理事無碍)’, 즉 ‘본체의 리(理)와 현상에서의 일은 서로 걸림이 없다’라 하였다. 도는 식색의 욕망, 희노애락, 부귀공명 등의 잡다한 일 속에서 구현할 수 있다. 그 방법이 바로 성찰공부인데, 이것은 언제나 정신을 차려 자기를 살피는 공부이다.

사실 함양공부와 성찰공부는 따로 단계가 있어 차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하는 것이다. 함양공부는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나 자기 속의 빛의 근원을 찾는 것이요 성찰공부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어디로 가는지를 살펴 조절하는 것이다. 내면의 빛이 드러나면 밖의 삶이 조화로워지고, 밖의 삶이 조화로우면 내면의 빛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함양과 성찰을 모두 통 털어서 ‘공부’라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태양의 큰 빛과 하나가 되어 삶의 세계에서도 죽음의 세계에서도 조화로움이 깃든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