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어울려 춤추고 싶은 소망 계룡산 아름다운 풍경서 이뤄내 소신·고집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 내년 생각에 벌써부터 손이 분주

벼를 막 베어낸 들판으로 석양이 쏟아졌다. 멀리 야산의 노랗고 붉은 가을의 색채가 노을빛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과 같았다. 거기에 내 지인들인 글쟁이, 그림쟁이, 사진쟁이, 춤쟁이 불러다 한바탕 노닌다면 그대로 좋을 듯 싶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996년 가을, 머릿속을 맴돌던 그 구상이 계룡산자락에서 펼쳐졌다. 매년 10월의 셋째주말이면 달리 알림이 없어도 자연과 어우러진 볼만한 춤과 인접한 다른 공연예술들이 어김없이 계룡산 자락에서 열린다는 슬로건으로 ‘계룡산에서의 춤’이 시작됐다. 생각해 보면 그 첫해가 자연과 가장 어우러졌던 자리였지 않나 생각한다.계곡에서부터 시작한 춤은 그대로 윗마당 까지 올라와 산, 나무, 물을 배경으로 살아있는 춤으로 승화됐다. 무대가 정형화 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 자연스러움은 더 고조될 수 있어 신선한 작품을 선뵐 수 있었다. 공연이 완성되기까지 갖추어 지지 않은 무대와 예측 불허의 기후 등에서 오는 어려운 여건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무용수들의 육체적 고통 말고도 보이지 않는 그 밖의 요소들이 더 그 당시의 나를 힘들게 했다. 무모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야외공연이 많이 확산돼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15년 전만해도 어디 상스럽게 야외에서 춤을 추느냐고 수군거리는 무용인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에도 동숭동 대학로 등지에서 거리공연을 서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저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들도 지금은 거꾸로 열심히 내 프로젝트에 동참해 힘이 돼 주신다. 아무튼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마저도 이런 반응이었으니… 첫 번째 난관은 국립공원관리공단과의 마찰이었다. 전국 국립공원 어디에서든 그런 공연을 하는 곳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차라리 예술의 전당이나 그밖에 일정한 절차와 비용으로 대관하는 공연무대 라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런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장소를 관리하는 공무원들과 사찰에 계신 분들의 예술적 마음가짐에 관한 문제였다. 끝없이 설득해야 했고 어찌어찌해 우리의 몸짓을 이해하게 돼 한숨 돌리면 소장님이 바뀌고, 주지스님이 바뀌면 먼저 있었던 분이 허락하고 좋아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새로 오신 높은 분이 공연을 허락하지 않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인의 경력이나 명예를 위해 하는 행위였다면 일찍감치 포기했을 것 같은 울컥거림이 아직도 남아있다.그래도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관객들과의 약속과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매년 찾아와주는 고정 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룡산공연은 무르익어 갔고 하지 않아도 될 싸움들이 6~7회 거듭되면서 협조 분위기로 가는 것 같더니 10회쯤에는 더 이상 일련의 잡음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의 풍광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예쁜 무대도 제공받고 지금은 너무나도 돈독한 관계로 함께 가고 있다. 아마도 그건 소신이 있기에 밀아 부칠 수 있었던 나의 고집스러움과 나의 몸짓만이 최고라고 여겼던 자신감과 자부심, 그들의 고충도 이해하려한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 조용히 산행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게 음향을 최소한 작게 한다던지 꼭 필요한 부수 만큼만 공연 안내물을 만들어 쓸데없는 환경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으려 했던 작은 노력이 행사를 거듭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고의 폭이 함께 넓어져 갔기 때문이다. 이 춤판을 거쳐 간 팀들만도 80여 팀이 넘는다. 그리고 멀리 강원도에서부터 해마다 오는 고정 관객도 있다. 그리고 비록 옷차림은 남루 했지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만 원 짜리 지폐를 건내며 수고 한다고 격려 해 주던 마음이 멋진 아주머니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느 날 무용수들 머리위로 떨어지는 단풍비에 유도되지 않은 함성의 소리도 기억하고 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있을 온갖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 놓은 채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않았을까. 계룡산공연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관객들이 오히려 더 마음을 열어놓고 관람하기에 비록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만은 춤추기에 더 편하다는 노하우도 생기면서 이제까지 그리 해왔듯이 조금씩 조금씩 공연의 넓이와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집 먼저 지어놓고 채우지 못해 식상한 발걸음 느끼게 하는 다른 이웃의 여느 축제들과는 달리 준비된 식탁 가득 채워 나가 이쁜 집 지어 보이는 그런 축제, 행사이고 싶다. 이제 겨우 식탁하나 채운 것 같은 소감에서 말이다. 그 옆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더 놓아도 좋을 듯 싶고… 내년 16회 가 오기 전 까지 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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