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을 출발한 쾌속선은 불과 한 시간 남짓 달리더니 대마도(對馬島)항구로 접어든다. 부두에 정박한 순시선에 달린 일본기와 이곳 특유의 이층집이 외국임을 확인해 준다. 입국(入國) 심사에 지문을 요구하는 방법이 구태(舊態)같아 불쾌하다. 바람도 상쾌하고 날씨도 쾌청한데 왠지 마음 한 구석은 열리질 않는다. 바닷가를 따라 지어진 집터 이외는 들이 없고 산들의 경사도 급하다. 이곳이 척박한 곳임을 단박에 알 것 같다.

늦었지만 하고 싶었던 한국어 공부를 더 하고자 입학했던 학부과정을 다시 마치고 졸업여행으로 찾은 곳이다. 가깝지만 먼 곳, 언젠가 한 번은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덕혜옹주(德惠翁主)의 기록을 접하고는 더욱 대마도를 생각하곤 했다.

대마도는 우리의 영토였었다. 역사적으로 지도(地圖)상에 분명하게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다. 심지어 근대에 우리가 이곳의 반환을 요구했었다. 이런 사실을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곳의 역사적 사실을 연구, 발굴하여 후손들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난 대마도를 꼭 한 번 찾고 싶었다. 특히 조선(朝鮮) 왕조의 딸로 태어나 비운의 삶을 살다간 덕혜옹주. 우리의 가슴 아픈 근대사를 처절하게 겪은 한 여인의 삶을 느껴보고 늦었지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는 조그만 시골 마을의 공원 한 구석에 초라하게 서 있었다. 비석 앞에는 한국인 관광객만이 서성거릴 뿐 쓸쓸한 분위기다. 몇 줄의 글로만 내용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비석(碑石) 아래에 외로운 영혼을 달래듯 하얀 수선화가 고개를 숙이고 방문객을 맞는다. 아니면 제왕(帝王)의 딸이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이 수선화로 피어난 것은 아닐까.

비석 정면에 옹기종기 모여 고개를 숙이고 흰 바탕에 잔대를 올린 듯한 수선화 몇 송이가 가지런하다. 화려하지도 않고 가녀린 꽃대가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지난날 시달렸던 우리의 모습 같아 착잡하다. 돌계단 뒤로는 그나마 좀 밝은 노란수선화가 띠를 두르고 심어져 있다. 수선화 꽃잎 위의 잔대(盞臺)에 술이라도 한 잔 붓고 싶은 마음으로 생수 한 병을 부어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이곳은 수선화가 많이 자생하는 지역인 것 같다.

수선화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지중해가 원산지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습한 땅에서 잘 자라며, 땅속의 비늘줄기는 검은색으로 양파처럼 둥글다. 잎은 난(蘭)같이 선형(線型)으로 자란다. 꽃은 12월에서 3월경 줄기 끝에 피는데 향기롭다. <대전광역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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