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8번째 위국침략①

이때 강유는 하후패로 전부군을 삼고 1군을 주어 조양을 취하게 했다. 하후패가 멀리 조양성 위를 바라보니 깃발도 없고 사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하후패는 마음속으로 버쩍 의심이 나서 선 듯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제장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협사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성이 비었어요. 백성들이 우리 군사를 보고 놀라 달아났나 봅니다.”

“아냐. 내가 직접 살펴보고 오겠다.”
하후패는 그리 말하고 친히 말을 달려 성 남쪽을 둘러보았다. 성 뒤를 보니 남부여대하고 피난 가는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하후패는 신중하게 성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다 탐색하다 서북쪽을 바라보니 백성들의 달아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하후패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기뻐하며
‘참으로 공성이었어!’

혼자말로 중얼거리다 말고 앞장서서 말을 달려 나가니 모든 장병이 뒤를 따랐다. 하후패는 공성이라는 생각 뿐 아무런 대책 없이 옹성 앞에 당도했다. 그때 놀랍게도 포성이 크게 울렸다. 동시에 북소리 징소리도 함께 터져 나왔다. 그런가하면 성위에서 깃발이 도깨비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뜻밖에 적교도 번쩍 올라가자 하후패가 간담이 떨러질 지경이 되어
“내가 속았구나! 계교에 떨어졌어!”

외마디 비병 같은 소리를 남기고 급히 말머리를 돌려 물러나려 할 때, 성위에서 살과 쇠뇌가 빗발쳤다. 하후패는 어지럽게 쏟아지는 난전을 맞고 허망하게 죽었다. 그를 따라갔던 5백 군사도 조양성 아래서 모두 죽었다. 뒷날 시인이 하후패의 죽음을 두고 시를 지어 탄식했다.
‘대담한 강유에게 묘한 꾀가 많았으나/ 누가 알았으랴 등애의 비밀스런 방어수단을/ 가련하구나! 촉한에 항복한 하후패 장군이여!/ 삽시간에 성 아래서 화살 맞고 죽었구나!/’

사마망은 하후패가 죽으니 성중에 매복한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자 촉병들은 크게 놀라 달아났다. 촉병의 대패였다. 패잔병이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얼마나 달아나다가 강유의 접응하는 군사를 만나 합류했다. 강유는 조양성 아래까지 진출하여 사마망의 군대를 물리치고 거기다 진을 쳤다. 진을 치고 패잔병을 점고하니 그때 비로소 하후패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망명의 한을 품고 고국 위국을 향하여 애통해하며 살아온 하후패의 일생이 여기서 막을 내렸다. 강유는 적장이지만 가장 친했던 동지가 된 하후패의 죽음 앞에 슬퍼 울며 통곡했다.

그날 밤 2경 등애는 하후성에게 1군을 주어 가만히 촉채를 기습하게 했다. 급작스럽게 들이 닥친 위병들의 등살에 촉병은 여지없이 혼란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강유는 안간힘을 다하여 수하 장졸을 진정시키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이런 와중에 다시 사마망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치고 징을 울리며 나타나 협공을 가하니 촉병은 대패 했다. 강유는 좌충우돌 분전하며 2십 리를 물러나와 겨우 진을 쳤다. 강유는 연이어 두 번을 대패하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크게 사기가 떨어져 전의를 상실한 장병을 모아 놓고 말하기를

“전쟁에 있어 승패란 병가에게 늘 있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병사를 잃고 장수가 죽었지만 크게 근심할 정도는 아니다. 성패가 결정되는 일은 이제부터 싸움이다. 장병들은 처음서 끝까지 세운 뜻을 고치지 마라. 만약 퇴병을 말하는 자가 있다면 지체 없이 목을 벨 것이다.”
강유의 비장한 각오를 담은 일장 연설을 다 듣고 나서 장익이 진언하기를
“위병이 모두 여기 있으니 기산이 비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군사를 정돈하여 등애와 대치하여 조양성과 후하성을 공격하십시오. 저는 곧 바로 1군을 거느리고 기산으로 나가 9채를 취하고 다시 장안으로 진병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입장으로서는 제일 상책인가 합니다.”

“그렇소. 장장군이 잘 말해 주었소. 아주 좋은 계책이라 생각하오. 곧 후군을 거느리고 기산으로 가서 9채를 공략하시오.”
강유는 장익의 계책을 옳게 여겨 곧 바로 후군을 주어 떠나보내고, 자신은 전부군을 거느리고 후하로 나가 등애와 맞섰다. 강유가 싸움을 돋우니 등애가 마주 나와 싸웠다. 두 편 군사는 원진을 치고 강유와 등애 두 장수가 나와 어우러져 싸웠다. 싸우기 수십 합이 지났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서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다음 날 강유는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나가 또다시 싸움을 돋우었다. 등애는 싸우러 나오지 않았다.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늘 그랬듯이 강유는 싸우자 하고 등애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을 하여 실마리를 찾아야 싸웠다. 오늘도 등애는 그저 막 싸우기 보다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강유는 군사를 등애 진 앞에 내보내 욕하며 싸움을 청했다. 그러나 등애는 그런 충동질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혼자 말로 중얼대기를

‘그래, 분명해. 촉병이 나에게 대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싸움을 걸어온 것을 헤아려 보면 이것은 분명히 계교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강유는 군사를 나누어 기산채로 습격하러 보낸 것이 분명하다. 지금 기산채를 지키는 사찬은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우선 군사수가 적은데다가 지혜가 미치지 못한 사람이니 반드시 패하고 말 것이다. 내가 속히 가서 구해야 한다.’
등애는 그렇게 생각하고 곧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는 조심해서 이곳을 지켜라. 강유가 싸움을 청해도 경솔하게 나가서 싸우지 마라. 나는 오늘밤에 군사를 이끌고 기산채로 가서 구원할 것이다.”
한편 그날 밤 2경에 촉진에서는 강유가 장중에서 계책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진 밖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났다. 북소리와 징소리에 섞여 산천이 진동한데 아장이 급히 장중으로 들어와 고하기를
“등애가 3천 정병을 이끌고 나와 밤에 한바탕 싸우자고 청합니다. 우리 장수들은 나가서 싸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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