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8번째 위국침략②

등애가 밤 싸움을 청한다하자 강유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게 말이 되느냐? 장수들이 싸우기를 원하다니 건방지구나! 주장인 내가 말이 없는데 밤 싸움을 하다니. 이것은 싸워서는 아니 된다. 경거망동하지 말라!”
등애는 촉채 가까이 와서 살피고 돌아갔다. 촉병이 움직이지 아니한 것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기산을 구하러 떠난 것이다.

한편 아들 등충은 아버지 등애의 명대로 후하성 안으로 들어갔다.
강유는 제장을 불러 당부하기를
“등애가 허장성세로 밤 싸움을 청한 것은 기산채를 구하러 간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에 상응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강유는 그리 말하고 부첨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는 이곳을 지키며 절대로 군사를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다짐을 두고 강유는 스스로 3천군마를 이끌고 장익을 도우러 기산으로 향했다.

한편 장익이 기산을 공격해 보니 사찬이 지키는 기산채는 군사가 적었다. 사찬은 장익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거의 실함 직전에 등애의 군사가 구원하여 1진을 시살하자 촉병은 크게 패했다. 격전은 2. 3차로 번지고 촉진은 싸우던 가운데 부대가 양단되고 말았다. 부대가 두 쪽으로 갈라지니 장익은 기산 후면에서 위병 가운데 포위당하고 말았다. 장익은 절망에 가깝게 곤고하게 되었다. 구원의 손길이 없다면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위급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함성을 크게 지르며 고각소리 산천을 흔들고 1군이 나타났다. 이 군마가 시살하는 곳에 위병의 머리가 추풍낙엽 지듯 떨어져 나갔다. 장익이 황망 중에 바라보니 앞선 장수는 다름 아닌 대장군 강유였다. 장익은 포위망이 풀리자 갑자기 어깨에 힘이 솟고 용기가 샘솟았다. 그 여세로 군사를 몰아 위병을 협공하니 등애의 1진이 크게 꺾이어 기산채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아니했다. 강유는 사면으로 위병을 포위하여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등애와 싸움은 늘 일진일퇴의 공방전일 뿐이다. 어쩜 둘은 아주 잘 어울린 적이고 상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와 촉의 국경선을 두고 두 장수가 마주하다 보니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강유는 위국정벌에 나서 기산채 앞에서 분전하고 있는데 성도에서는 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쩜 망국 풍조가 감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후주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전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이 주색에 빠져 지냈다. 내관 황호의 말을 듣고 조정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황호의 입이 촉국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이때 호씨라는 경국지색이 있었다. 그녀는 대신 유염의 아내로 성도의 제일절색이라 했다. 그런 까닭에 황후마저도 그녀를 심히 귀애했다.

어느 날 궁에 들어가자 황후가 붙잡아 한 달 여를 궁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이것이 탈이 났다. 워낙 후주가 호색한이라 그녀의 남편 유염이 의심하기를
‘저년이 한 달씩이나 궁에 있었으니 후주와 붙었을 거야.’
유염은 그리 생각하고 자신이 거느린 군사 5백 명을 뜰 앞에 세우고 아내 호씨를 벌주기를
“너희들의 신발로 저년의 뺨 쪽을 때려라!”

아내 호씨를 결박 지워 두고 욕을 보였다. 호씨는 너무 혹독한 벌을 받다보니 몇 번인가 까무러쳤다. 그럴 때마다 찬물을 끼얹고 깨워서 혹독한 형벌을 계속 내렸다.
이 소문이 후주의 귀에도 들어가자 불같이 노하여
“무어야? 짐에게 사통한 누명을 씌웠단 말이지. 유염이란 놈을 그대로 두어서는 아니 되겠다. 짐은 결백하다. 죄를 물어라! 죄를 의논하라!”

후주의 엄명이 떨어지자 유염의 죄를 논한 바 아내의 얼굴을 때린 일은 기시(棄市)죄에 합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후주는 그 논거로 유염을 참형에 처했다.
이후부터 대궐에 부인이 입조하는 일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이 있는 후부터 신려들이 후주의 황음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드높았다.
그런가하면 매관매직이 횡횡하여 어질고 총명한 이는 조정에서 멀어지고, 간사한 소인배들이 옆문으로 등용되어 조정은 인재가 사라져갔다.

이때 우장군 염우는 손톱만큼의 공도 세운바가 없었는데, 내관 황호에게 아첨하여 큰 벼슬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염우는 강유가 기산으로 향하여 위를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황호를 찾아가 부탁하기를
“강유가 기산에 나가 위를 습격하여 큰 공을 세울 것이라는 풍문을 들었소. 전쟁이란 본시 대장이 직접 싸운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싸우는 것인데, 공훈은 대장이 세운 것으로 압니다. 나를 우장군까지 승차시켜 주셨으니 기왕이면 이번 기산 싸움에 염우를 보내주시오. 강유와 맞바꾸어 내가 공훈을 세우게 기회를 주십시오. 후주께 한 번 잘 말씀드려 주시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염우는 공을 하늘 같이 믿고 사는 사람이니 이번에 다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이에 황호가 염우에게 대답하기를
“우장군은 참으로 성실한 장군이시오. 나라를 위하여 전장 터로 나가기를 그렇게 겸손하게 돌려서 말씀하시니 폐하께 말씀드리면 기뻐하실 것이오. 내가 출전을 주선할 테니 가서 출전 차비나 잘하고 기다리시오.”
황호는 자신이 임금이나 된 것처럼 아주 단정적으로 말하고 염우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곧 바로 후주를 찾아가 아뢰기를

“폐하, 기산 전투가 지지부진합니다. 강유가 힘써 싸우는 것이 아니고 세월만 축내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강유를 소환하시고 우장군 염우로 교체하여 투입하소서. 염우는 폐하께서 지금까지 키워온 장수입니다. 그런 장수를 성도에서 썩히기는 아까운 일입니다. 이번 기회에 기산에 나가 지략을 마음껏 펼치게 중책을 맡겨 주소서.”
황호의 자상한 설명은 곧 바로 약발이 섰다. 후주는 크게 기뻐하며 염우로 기산채를 공격하라 명하고 강유를 소환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때 강유는 기산에서 위채를 공격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환하는 조서가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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