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8번째 위국침략③

‘강유를 소환코자 계속 날아오는 조서.’
조서는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3일을 거듭하여 날마다 꼭 같은 조서를 다른 사자를 보내 강유를 압박했다. 행여나 황명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킬까 봐 황호가 그리 시킨 것이다. 참으로 내관 황호의 위세는 끝내주는 위세였다. 전쟁마저도 좌지우지하는 내관 황호이니 말이다.
강유는 싸움을 중지하고 황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양성에 주둔한 군사를 먼저 물리고 다음엔 장익과 함께 서서히 위의 동태를 살펴가며 퇴군했다.

이때 등애는 진중에 있는데 밤중에 갑자기 북소리 징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무슨 까닭인지 의심했으나 기왕 지키고 싸우지 아니한 것이니, 군사를 움직이지 아니하고 그 밤을 넘겼다.
다음날 날이 밝아 수색조를 보내어 촉병의 근태를 살피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촉병은 간밤에 모두 물러가고 텅 빈 영채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구나! 촉국에 또 무슨 변이 있어 물러간 모양이다. 강유가 계교로써 나를 속이고 한 일이니 그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반드시 복병을 두고 물러갔을 것이다. 추격하면 당할 뿐 잇속은 없다.”

한편 강유는 한중으로 무사히 회군하여 군마를 쉬게 하고 사자와 함께 성도로 갔다. 후주를 뵈러 간 것이다. 그러나 10여 일이 지나도 후주는 조하를 받지 아니 했다. 조정이 이러하니 한 줄기 의혹이 일어 답답해 하다가, 소일 삼아 궁성 동화문 앞을 걷게 되었다. 거기서 뜻밖에 비서랑 극정을 만나게 되었다. 강유는 조정 돌아가는 내용을 듣고 싶어 극정에게 묻기를
“천자께서 나를 소환하여 반사하라 하신 까닭을 비서랑은 아시오?”
“장군께서는 오신 지 여러 날이 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그 연유를 모르시고 계십니까?”

“전혀 아무 것도 모르고 기다리기만 하였소. 소상히 말해 주시오.”
“황호가 장난을 친 것입니다. 내관 황호가 우장군 염우로 장군의 직책을 대신해서 공을 세워 보도록 하기 위해, 장군을 소환한 것인데 중도에 탈이 붙었습니다. 그것은 염우 귀에 등애가 용병의 귀재라는 소문이 들어가 염우가 강장군의 직책을 마다했답니다. 그러니 황호가 다시 폐하께 염우의 보직을 그대로 두자고 하여 생긴 작은 갈등이지요.”
“아니, 이것을 작은 갈등이라 했소? 내가 그 내시를 찢어 죽이고 말테요.”

“대장군! 안 됩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대장군께서는 제갈무후의 큰 뜻을 계승하시어, 직책이 무거우신데 어찌 함부로 행동하려 하십니까? 만약 폐하께 용납되지 못한다면 도리어 불상사가 날 것입니다. 그리되면 이 나라의 장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비서랑 그대의 말이 옳소. 내가 잠시 격분한 모양이오. 내 어찌 무후의 높으신 뜻을 잠시인들 잊겠소이까.”
강유는 극정과 헤어지고 객관으로 돌아와 제갈무후를 그리는 마음으로 낙루를 금치 못했다. 한편으로 후주가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자신은 목숨을 내던지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아니 하고 싸우고 있는데 후주는 황음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후주의 황음은 국정의 문란으로 이어졌다.’
강유는 성도에서 여러 날을 보내고 극정의 입을 통하여 후주의 황음을 알게 되었다. 황호의 전횡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참고 기다리다가 임의로 후주를 알현코자 궁성으로 들어갔다. 후주는 황호 등의 무리와 후원에서 연회를 베풀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강유는 몇 사람의 수하와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궁중의 시자가 급히 황호에게 강유의 내방을 알리자, 황호는 재빨리 석가산 뒤편으로 몸을 피했다. 쥐새끼처럼 빠르게 피했다. 강유는 후주 앞에 나가 절하고 울면서 아뢰기를

“신은 등애와 기산에서 여러 번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실로 등애를 곤경에 빠지게 하여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하온데 3일을 연이어 조서를 내리시어 신을 소환하라 하시니 그 깊은 연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의(聖意)가 어느 곳에 계시오니까?”
후주는 강유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대답을 못 하자 강유가 다시 아뢰기를
“내시 황호는 간휼하게도 정권을 농락하여 마치 영제 때 십상시와 같은 자입니다. 폐하께서는 가깝게는 내시 장양을 생각하시고 멀게는 조고라는 내시의 횡포를 생각하소서. 황호는 이름만 다를 뿐 이들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같은 만행을 저지르는 자입니다. 이자를 빨리 없애야 조정이 평정을 되찾아 중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대장군은 황호를 너무 과하게 평가하여 말하는 구려. 황호는 나의 심부름을 하는 작은 신하요. 권세를 농락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갖춘 자가 아니요. 전에 동윤이 이를 갈아붙이고 황호를 발고한 적이 있었소. 그러나 짐은 이를 괴상하다 생각했소. 경은 어찌 그리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가?”
“폐하! 정영 오늘 황호를 없애지 아니하시면 그 화가 조정에 크게 미칠 것입니다.”
“짐은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죽이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 인정이라 믿고 있소. 경은 어찌 한낱 환관에게 그리 인색 하는가?”

후주는 말을 마치고 근시를 불러 명하기를
“그대는 지금 석가산으로 가서 황호를 불러오너라! 그는 강유 대장군이 오자마자 석가산에 가서 숨어 있다.”
근시가 후주의 명을 받들어 날래게 황호를 석가산에서 데려왔다. 그러자 후주는 기묘한 연출을 시도하기를
“황호는 들어라! 속히 대장군께 엎드려 너의 죄를 청해라!”

후주의 명에 황호가 울면서 강유에게 절하며 말하기를
“소인은 이제부터 성상을 모실 뿐 다시는 국정에 간여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장군 께서는 타인의 말만 듣고 저를 죽이려 하지 마십시오. 황호의 목숨은 장군께 달려 있습니다. 장군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황호가 변설을 늘어놓고 머리를 두드리며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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