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 -1

고삼
겨울을 겨우 막 벗어난 메마른 산자락에서 연분홍 진달래꽃을 본 지가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온 산의 나무는 연녹색으로 물들고 들풀은 무릎 위로 자라나 있다. 넓게 퍼져 있던 개불알꽃 자리엔 갈퀴나물이 덮어버려 자리바꿈을 했다. 햇빛은 이미 여름철 뙤약볕처럼 내리쬐고 간간이 만나는 나무그늘도 반갑다. 높은 가지에서 반짝거리는 감나무 이파리가 신비스럽기만 하다. 빠른 계절의 변화에 맞추려는 풀과 나무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황새바위에 걸터앉아 인증샷을 하고 쉼터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마음까지 씻어준다. 대청호수 위에 떠 있는 흰구름과 쪽빛하늘은 섬세하게 그린 한 폭의 수채화다. 멀리 구릉을 메운 나무들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수평선 먼 곳에 흰점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촌락도 정스럽다. 대청호의 이 아름다운 풍경은 외국의 어느 유명한 호숫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야외수업을 나온 약초반원들의 감탄사가 그칠 줄을 모른다. 평일이라선지 지나는 이도 드물다. 오늘은 대청호 주변을 모두 전세 낸 기분이다. 모두 지긋하신 연세임에도 밝은 모습이 앳된 아이들 같다. 이런 주변에 사는 시민으로서 보람과 긍지까지 느낀다고 하니 최고의 감탄사다.

오솔길 바로 옆에 오래된 듯한 산소가 쌍분(雙墳)으로 오가는 이를 맞는다. 비석(碑石)으로 보아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의 산소다. 봉분 앞에 뾰족한 대궁을 올리고 있는 두세 뼘 자란 싹을 가리키며 모두들 궁금해 한다. 고삼(苦蔘)이다. 이상하게도 어린 순은 거무스레하고 줄기 끝에 싹을 낼 부분만 잎을 내민다.

일반적인 풀줄기의 푸르스름한 녹색과는 다른 모습이다. 무슨 나뭇가지를 땅에 박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고삼은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란다. 키는 1 미터정도 크고, 줄기는 곧게 서다가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어린 가지에는 털이 나며 검은 빛이 돌다가, 자라면서 털은 없어지고 녹색을 띤다. 잎은 어긋나고 여러 개의 작은 잎이 달린 홀수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긴 타원 모양이거나 달걀 모양이다. 꽃은 6 ~ 8월에 피고 가지 끝에 연한 노란색 꽃이 줄줄이 달린다. 열매는 꼬투리 열매로 아래로 늘어지며 씨가 들었고 익어도 갈라지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도둑놈의지팡이, 뱀의정자나무, 너삼 또는 느삼 등으로도 불린다.
 

이 풀은 그 이름이 특이하고 재미있다. 고삼(苦蔘)이란 이름은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쓴맛이 난다해서 붙여진 것이다. 도둑놈의지팡이는 뿌리의 생김새가 길게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해서 그렇게 불려진다고 한다. 뱀의정자나무는 뱀이 쉬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 옛날에 도둑놈들이 그런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는지, 뱀이 유독 이 풀에서 쉬어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선인들의 풀이름 짓기는 퍽 해학적이었던 것 같다. 고삼보다는 도둑놈의지팡이, 뱀의정자나무가 더 정겹게 느껴진다.

<대전광역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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