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 감상 - 29
-題太公釣魚圖(제태공조어도)- -태공이 낚시하는 그림을 보고 짓다-
鶴髮投竿客(학발투간객)은 백발에 낚싯대를 던지는 나그네는
超然不世翁(초연불세옹)을. 이 세상 노인이 아닌 듯 초연하구나.
若非西伯獵(약비서백렵)이면, 만약 서백(西伯)이 사냥오지 않았다면,
長伴往來鴻(장반왕래홍)을. 영원히 왕래하는 기러기와 벗했으리.

◆지은이: 정인인(鄭麟仁)의 어머니.
이 시는 태공망(太公望)이 낚시하는 그림을 보고서 지은 시인데, 그림과 역사와 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태공망은 그 이름이 여상(呂尙)인데, 그는 천하를 경륜할 기량을 갖추고서 80세가 되도록 은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주(周)나라의 태공(太公)은 늘 자기의 주나라를 번창시켜줄 인재가 나타나기를 바라다가 죽었다. 그 후 태공의 손자인 서백(西伯), 즉 문왕(文王)이 하루는 사냥을 가기 전에 복관(卜官)에게 일진을 점쳐보게 했는데, 특이한 인재를 만나게 된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위수(渭水)라는 강가로 말을 몰고 가보니, 거기에 백발노인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문왕이 말을 걸어보니, 그는 천하를 경영하는 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초빙하여 등용하자, 그는 제후국이었던 주나라가 천자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노인, 즉 여상이 바로 문왕의 할아버지인 태공이 희망(希望)하던 그 인재라는 데서, 여상을 ‘태공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시는 위와 같은 고사를 바탕으로 지은 시인데, 끝 구절은 지은이의 주관적인 표현이다. 지은이는 태공망이 자기를 알아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영원히 은둔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지은이가 그 생각을 “영원히 왕래하는 기러기와 벗했으리”라고 읊은 것은, 출처(出處)의 도리를 운치 있게 표현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이 시는 웅혼한 규모를 가진 작품인데, 마치 천하사를 한 눈에 통찰한 대학자의 시 같다. 지은이는 비록 여자이지만 넓은 국량과 높은 시적 감각은, 그 어떤 호걸이나 재사(才士)에게도 밑지지 않아 보인다.

한국 한시 감상 - 30
- 江南曲(강남곡) - - 강남의 노래 -
人言江南樂(인언강남락)이나, 남들은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지만,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를. 나는 강남의 슬픔을 맛보노라.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에 해 마다 해 마다 모래밭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를. 돌아오는 배를 애끓게 바라보네.

◆지은이 허난설헌(許蘭雪軒):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여류시인.
이 시는 남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심정을 읊고 있는 작품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했던가. 허난설헌은 높은 재능을 가졌었지만, 그녀의 일생은 기구하기 그지없었다. 어릴 적에 시의 명인(名人)인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재능을 연마했고, 15세 때 김성립(金誠立)과 결혼을 했다. 그때부터 고부간의 갈등과 남편의 방탕, 어린 남매의 죽음, 그리고 친정 오라버니의 죽음 등으로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인생의 낙을 일점도 느껴보지 못한 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녀의 한은 그 깊이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강남(江南) 땅을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여기지만, 지은이는 강남에 있어도 늘 슬픔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 슬픔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남편과의 잦은 이별인 것이다. 그녀의 「규원가(閨怨歌)」에는 남편을 두고 노래하기를, “삼삼오오 때지어 다니는 술집에 새 기생 나타났단 말인가/ 꽃피고 날 저물 때 정처 없이 나가서 백마에 금 채찍 행장을 하고 어디에 머무는가/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자세한 소식이야 어찌 알랴”라 했다.

지은이의 남편은 출중한 재능을 가진 지은이가 버거워서인지, 도무지 집안에 머물지 않고 늘 밖으로 나돌며 환락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남편을 생각하며 지은이는 수시로 포구로 나가 혹시나 남편이 집으로 다시 올까하면서 돌아오는 배를 바라본다. 이러한 상황 속에 사는 지은이는 아무리 강남땅에 산다한들, 마음이야 어찌 즐거울 수 있으랴.

이 한 수의 시는 지은이의 서글픈 운명을 한 눈에 알아차리게 하는 수작(秀作)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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