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 고산준령을 넘다.①

종회가 등애를 만나고 나서 등애를 평하여 말하였다. 볼품없는 용재라 하였다. 그러자 제장들이 물었다. 이에 종회가 거침없이 말하였다.
“제장들은 내 말을 잘 들어 두라. 얼마나 등애가 무모지배인지를... 등애는 성도를 치러 가는데 작전이란 것이 고작 음평 소로로 해서 한중 덕양으로 나간다 했다. 그러나 그곳은 고산준령이다. 만약 촉병 백 여 명으로 험준한 요새를 지켜서 귀로를 끊는다면, 등애의 군사는 굶어 죽을 것이다. 그 길은 너무 위험해. 나는 모험은 피하고 큰길을 취하여 갈 테다. 이같이 하면 전혀 위험 부담 없이 성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종회는 그리 말하고 곧 운제(雲梯)와 포가(砲架)를 설치하여 검각을 무찌를 계획을 했다.

한편 등애는 원문으로 나가 말을 타고 종자를 돌아보며 묻기를
“종회가 내가 검각 점령을 기다려 줄까?”
제가 살펴보니 종장군은 안색이 장군의 말씀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입으로만 그리 수긍한 것처럼 말했을 것입니다.”
“종회, 저 사람은 내가 성도를 취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성도를 취하고 말 것이다.”

등애가 본진으로 돌아오니 사찬과 등충 등 제장들이 영접하고 묻기를
“오늘 종회장군을 만나 무슨 일을 이야기하셨습니까?”
“나는 내 진실을 말했는데 종회 그자는 나를 용재로 보는 모양이더라. 저자는 한중을 얻은 일에 대하여 대단한 공으로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답중에서 강유를 붙잡아 놓지 않았다면 제깟 것이 어찌 성공했겠느냐? 내가 이번에 성도를 취한다면 한중을 취한 공보다 더 나을 것이다.”

등애는 그리 말하고 그날 밤 영채를 뽑아, 음평 소로를 향하여 군사를 이동하여 검각 7백 리 허에 영채를 세웠다. 첩자가 이 사실을 종회에게 알리니 종회가 조소를 금치 못하며
“허어! 그 어리석은 필부가 아주 바보짓을 하기로 작정했구나. 참으로 슬기롭지 못한 위인이다.”
한편 등애는 밀서를 써서 <성도를 취하러 간다.>고 사마소에게 보내고 한편으로 제장들을 장하에 모아놓고 묻기를

“나는 지금 촉국의 허한 틈새를 보아 성도를 취하러 가는 길이다. 너희들과 함께 불후의 공훈을 세우고자 한다. 그대들은 모두 나의 뒤를 따르겠는가?”
제장들이 입을 모아 대답하기를
“우리는 군령을 준수하여 만 번 죽더라도 장군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등애는 제장들의 확답을 받고 먼저 아들 등충에게 영을 내리기를

“너는 5천 정병을 거느리되 장병이 갑주를 벗고 손도끼와 끌을 지니게 하라. 그래서 산속 험준한 곳을 만나거든 산을 뚫어 길을 개척하고 다리를 놓아 행군하는데 불편이 없게 하라.”
등애는 등충에게 명령을 내리고 군사 3만 명을 뽑아, 군사마다 마른 양식과 밧줄을 준비해 나가게 했다. 등애의 군사가 1백 리 쯤 왔을 때다. 군사 3만 명 중 3천 명을 가려 뽑아 진을 쳐서 머물게 하고, 다시 백여 리 쯤 가서 또 3천 명을 뽑아 영채를 세우고 주둔하게 했다. 이와 같은 행군은 계속 되어 20여 일 만에 7백 리를 행군했다. 그동안 무인지경을 달려온 것이다. 등애는 연도마다 3만 명 중 3천 명을 떨어뜨려서 여러 채의 영채를 세워 두니, 남은 군사는 고작 2천 병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병마는 정예 중에 정예만 남았다. 2천 병마는 진군을 계속했다. 한 곳에 당도하자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높고 험준한 고개가 나타났다. 말하여 마천령(摩天嶺)이다.

“아아! 이것이 산이냐? 악이냐?”
2천 병사들은 놀라고 말았다. 도저히 말을 타고 갈 수 없는 험준한 산이 나타난 것이다. 등애는 말에서 내려 기어올랐다. 천신만고 끝에 고개 위에 올라서니 아들 등충이 군사들을 독려하여 산을 뚫어 길을 내는데 장병이 모두 울고 있었다. 등애가 가까이 가서 우는 까닭을 물으니 등충이 아비에게 대답하기를
“이 고개 서편은 모두 다 준령과 가파른 석벽으로 된 낭떠러지입니다. 아무리 끌로 파고 정으로 뚫어 길을 냈으나 석벽이고 낭떠러지니, 노력만 허비했을 뿐이라 울고 있습니다.”

“등충은 들어라! 우리 군사가 여기 까지 7백여 리를 왔다. 이곳을 지나면 곧 강유땅이다. 어찌 다시 회군하겠느냐? 너희의 공력이 충분히 보상 받을 것이니 울음을 그치게 하라.”
등애는 아들 등충에게 그리 말하고 곧 제장들을 모두 불러 분부하기를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겠느냐? 나는 너희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으니 성공한다면 부귀영화를 함께 누릴 것이다.”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장군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따를 것입니다.”

등애는 석벽과 낭떠러지는 뒹굴어 내려갈 마음을 먹었다. 무기를 몸에 붙들어 매고 담요로 온몸을 칭칭 감아 묶었다. 그리고 깎아지른 천길 절벽을 등애가 제일 먼저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부장들이 등애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고 제 각기 담요로 몸을 감싸고, 등애의 뒤를 이어 천길 절벽을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담요가 없는 병사들은 허리에 밧줄을 연결하여 매고 나무나 돌 풀뿌리를 붙잡고 줄 지어 내려갔다.
인간에게 누가 불가능이 없다고 말 했을까? 길을 내고 산을 뚫으며 울던 등충과 그의 부하들도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마천령을 넘었다. 죽음을 결심하고 절벽을 내려간 장병이 땀을 씻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의갑과 무기를 정돈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앞을 바라보니 길섶에 돌기둥과 같은 비석이 우뚝 서 있었다.

등애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 비석 가까이 가서 보았다. 어린 듯 홀린 듯 비석을 바라보니 비석 전면에 쓰였으되
<승상 제갈무후 쓰다.>라 새겨 있었다. 등애가 다시 무슨 글씨는 없는가? 살펴보니
<二火初興 有人越此. 二士爭衡 不久自死. >
등애가 한 동안 바라보며 비문을 재삼재사 읽어 보다가 그만 놀라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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