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 고산준령을 넘다.②

“아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등애는 온몸에 찬바람이 일고 진땀이 흐르고 소름이 쭉 끼쳤다.
왜냐하면 二火는 합쳐보면 炎 불꽃 염자다. 이때가 염흥 원년이니 곧 두 불꽃이 일어난다는 파자다. 또 二士爭衡이사쟁형은 등애의 자가 士載요 종회의 자는 士季다. 이는 곧 사재와 사계가 다툰다는 말이다. 다음은 有人越此유인월차란 뜻은 사람이 있어 이곳을 넘어왔다는 말이다. 곧 마천령을 등애가 넘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쯤 되면 등애 쯤 되는 위인이라도 놀라지 않고 배기겠는가? 10년도 더 지난 그 전에 이렇게 등애가 올 것을 안 제갈무후였다. 등애은 다시 마지막 구절에 눈이 멈추었다. 不久自死란 글자에서 마음이 멈춘 것이다. 그 글자 그대로라면 불구자사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죽는다는 뜻이다. 등애는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만 비석 앞에 엎어지더니 다시 일어나 재배하고 고하기를

“무후는 진정 신인이십니다. 등애가 일찍 스승으로 섬기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등애가 엄숙하고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하듯 말했다. 이 일을 두고 훗날 시인이 시를 지으니 아래와 같다.
‘음평의 높은 고개 하늘과 가지런하다./ 학도 겁을 내고 날지 못하고 돌기만 하는 곳./ 등애는 담요로 몸을 싸 이곳을 내려갔다./ 누가 알았으랴. 제갈무후 등애가 올 줄 알았으니.../’
등애는 감상적인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정복자의 의연한 자세로 돌아왔다. 그리고 군사를 전진시켰다. 한 동안 가다보니 거대한 빈 영채가 나타나자 등애가 좌우에 묻기를

“이것은 누가 싸움하던 빈 영채냐?”
“제갈무후 당시 1천 병마를 징발하여 이 험준한 산골을 지켰다 합니다. 그러나 공명이 돌아가신 후로 촉주가 없앴답니다. 이유인 즉은 하늘도 찌를 듯 험한 곳에 군사를 두고 지킬 필요가 없다 하여 지금은 빈 영채가 되었습니다.”
“아아! 참으로 신인이시다. 제갈무후는 병가에게 두고두고 귀감이 될 어른이시다.”
등애는 탄식을 금치 못하고 제장들에게 분부하기를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있으나 물러갈 곳은 없다. 앞에 있는 강유성에는 양식이 풍족하다. 너희들은 전진하면 살고 후퇴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모두 다 같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승전고를 울려라!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임을 명심하라!”
“장군 염려 마십시오. 죽도록 싸워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안아보겠습니다.”
“잘 이해했다. 이제 우리는 전진만이 살길이다. 가라! 싸워서 이겨라!”
등애는 2천 군마를 거느리고 도보로 행진하여 별빛이 빛나는 밤에 강유성을 무찌르러 들어갔다.

한편 강유성을 지킨 장수는 마막이다. 그는 비록 동천이 함락되었으나 큰길에 제방을 튼튼하게 쌓아 방비했다. 강유장군이 검각을 지키고 있으니 마막은 그것을 믿고 마음을 방일하게 가지고 지냈다. 그날도 군사 조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 이씨와 화로를 앞에 두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따라주며 아내가 묻기를
“들으니 나라가 위태롭다 들었습니다. 위국이 양평관을 점령하고 한중도 점령했다 들었습니다. 하온데 낭군께서는 전혀 근심하는 빛도 보이지 아니하고, 조심한 것 같지도 아니하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모든 국권을 강유가 장악하고 있으니 나는 할 일이 없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낭군께서 지키시는 성지도 중요하다고 소첩은 생각하는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참아, 속말을 털지 못했소. 사실은 임금께서 황호의 말만 듣고 주색에 빠져계시니, 내 생각에는 이 나라가 거의 망조가 들었다고 생각되오. 위병이 쳐들어오면 우리가 할 일이란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오. 당신은 나를 믿고 근심치마시오.”

마막이 그리 말하자 이씨부인은 크게 노하여 남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비겁한 자식! 당신이 남자의 몸으로 불충한 마음을 그리 품고 나라의 국록을 축내고 있었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을 낭군이라 대하겠소.”
마막이 부끄러워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데 군사가 급히 뛰어와 보고하기를
“위장 등애가 어디로 왔는지 2천 보병을 거느리고 성중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마막이 크게 놀라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더니, 아내 이씨에게 말하던 대로 무작정 등애가 있는 곳을 찾아가 항복을 청했다. 두 번 절하고 엎드려 울면서 고하기를
“제가 마음속으로부터 항복하려고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이제 성중 백성들과 본부인마를 초안하여 모두 장군께 드립니다.”
“공의 항복하는 마음을 내가 잘 알겠소.”

등애는 그리 말하고 모든 군마를 수하에 예속시키고 마막을 향도관으로 삼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부인은 목매어 죽었다. 등애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마막을 불러 그 까닭을 묻기를
“장군의 부인이 목을 매어 자살했다 하니 그게 어찌 된 일이오?”
“마막이 대답을 못하자 등애가 톤을 높여 다시 묻기를
“이봐 마장군! 부인은 왜 자진을 했어?”

등애가 재삼재사 묻자 결국 아내의 죽음을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그러자 등애는 이씨부인의 어진 행동에 감동을 받고 친히 나가 치제하고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탄식하였다. 후일 이씨부인의 충절을 시인이 시를 지어 예찬했다.
‘후주가 혼미하여 촉한국이 엎어지니/ 하늘은 등애를 보내서 서천을 취했구나./ 가련하다. 파촉에는 명장이 많다하나/ 강유성의 이씨부인 만한 어진이가 없구나!/’
비록 남편은 졸장부였으나 부인은 여장부였다. 대개 짝은 엇비슷하게 만나는 법인데 어쩌다가 그런 현숙한 부인이 돼지와 함께 살았을까 하늘이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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