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국이 무너지는 소리여!①

등애의 정복군이 시시각각으로 도성을 향하여 밀고 들어온다는 보고가 빗발쳤다. 이제 성도성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후주의 신하들이 마음이 들떠서 설왕설래 자기주장을 마구 말하였다. 속히 도성을 버리자는 관리도 있었다. 그 관리는 다시 말하였다.
“우리는 동오와 동맹관계의 사이좋은 나라입니다. 일이 이같이 위급하니 동오로 몽진(蒙塵)을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초주가 후주에게 간하는 말을 하였다.

“자고이래로 남의 나라로 망명한 천자는 없었습니다. 신의 요량으로는 위는 오국을 병탄할 수 있으나 오는 위국을 멸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오로 망명하면 후일 위가 오를 병탄하면 폐하께서는 칭신을 두 번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면 두 번 욕을 당하시는 것이 됩니다. 하오니 오국으로 가지 마시고 차라리 위국에 항복한다면 위는 폐하께 땅을 주어 봉해 줄 것입니다. 이리하면 위로는 종묘를 지킬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경의 말을 경청하였소. 물러가시오.”

후주는 뚱하니 한 마디하고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후주가 내전에서 잠들지 못하고 밤을 새워 뒤척이다가 뜬 눈으로 날을 밝혔다. 무정하게도 촉국이 망한다는데도 해는 동쪽에서 여지없이 떠올랐다. 후주. 유선. 아두는 조자룡이 천군만마 속에서 품에 품고 와서 살려낸 현덕의 아들이다. 그는 참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무골호인이었다. 기라성 같은 인재와 영걸들 속에서 그토록 무능한 군왕이 있었다니 우스꽝스런 역사다.

하늘은 무엇을 하고자 그런 무골충을 황제로 내었을까? 삼국지를 읽고 다시 소설을 만들어 보는 필자로서 하늘의 그 무한한 원모가 무엇인지 깊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제 후주 무골호인의 가는 길을 따라가며 하늘의 역사하심을 지켜보기로 하자. 후주가 태어나서 가장 괴로운 날이 활짝 밝았다. 대전에 모인 백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초주는 일의 심각성과 급함을 들어 다시 상소를 올려 항복을 주장했다. 후주는 한 동안 암소 마냥 순하게 눈을 천천히 껌벅거리더니 초주의 의견을 따라 항복을 결심했다. 그리고 조용히 모기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말하기를

“항서를 작성하시오.”
여기서 모기소리 이야기를 잠깐하고 후주의 이야기를 계속하자.
그러니까 모기소리는 비록 작지만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글에 ‘暮蚊寧死 有聲來, 朝蝎圖生 無蹟去.라 했다. 뜻만 새기면 저녁 모기는 죽을 지언정 소리를 웽~하니 내고 사람이 사는 방으로 들어가는 법이다. 그 소리 작지만 의로운 소리다. 모기는 말한다. 내 비록 오늘밤 그대의 인혈을 빨고 후사(後嗣)를 양산할지라도 그대에게 내 힘껏 소리 질러 내가 왔음을 알리노라. 죽이든지 살리든지 그것은 그대 인간의 맘이다. 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찾아드는 것이다. 그러니 모기 소리가 비록 작다하지만 허술하게 들어 넘길 성질의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벼룩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침 벼룩은 밤새도록 인혈을 빨고 배가 불렀다. 그 뿐이랴. 이능선 저 골짜기를 넘나들며,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즐기며, 먹고 마실 것 빨아 잡수고 슬그머니 자취도 없이 달아나는 것이다. 도생무적거란 참으로 비겁자의 모습이다. 사기꾼이나 권모술수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비인간적인 야비한 모습이다. 역사는 의인과 비겁자를 모기와 벼룩을 비교하여 말하기도 한다. 특히 저녁모기와 아침 벼룩의 생활양태 행동양식을 두고 교훈을 삼게 하기도 한다.

지금 후주의 측신들은 이와 같은 두 부류가, 국가 존망귀추의 이 자리에서 판이하게 판을 벌리고 있었다. 제갈가문은 확실하게 저녁 모기의 의(義)로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러나 초주를 위시한 수많은 마막과 같은 장수들이 아침 벼룩의 형태로 제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부첨과 장서의 경우도 모기와 벼룩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좋은 예가 된다.
항서를 쓰기로 했다. 초주가 앞장서고 후주가 허락했다. 이때 병풍 뒤에서 방성통곡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초주를 꾸짖기를

“제 살기만 주장하는 아침 벼룩 같은 놈이 어찌 망령되이 사직과 대사를 의논한단 말이냐? 자고로 천자가 항복하는 일이 있었더냐? 이 쓸개 빠진 선비 놈들아!”
후주가 놀라 바라보니 자기의 5자 북지왕 유심이다. 후주는 7왕자를 생산했다. 1자는 유선, 2자는 유요, 3자는 유종, 4자는 유찬, 5자는 유심, 6자는 유순, 7자는 유거이다.
7자 중 5자 유심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민할 뿐 나머지 아들들은 나약하고 착하기만 했다. 후주가 악을 쓰고 나온 유심에게 말하기를

“지금 대신들이 모두 항복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너만 혼자 혈기지용을 믿어 항복을 반대하니 앞으로 도성의 유혈사태를 어찌할 테냐?”
아버지 후주의 말에 아들 유심이 대답하기를
“지난 날 선제께서 살아 계실 때 초주는 국정을 주장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위인이 이제 망령되게 대사를 논해서 어지러운 말을 함부로 하니 문제가 큽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아직도 성도에는 수만 명의 군사가 있고 강유의 전군이 검각에 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 강유가 위병이 범궐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이리하여 안팎에서 위병을 협공하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썩은 선비들의 말을 듣고 선제의 기업을 하루아침에 버리려 하십니까?”

“그만 두어라. 너처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아배(小兒輩)가 어찌 천시를 알겠느냐? 짐이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구경이나 하며 따르라!”
후주가 나무라자 왕자 심은 목 놓아 울며 말하기를
“선제께서 이 나라를 천신만고 끝에 창업하신 줄 압니다. 하온데 부왕께서 하루아침에 종묘사직을 팽개치고 손을 들어 버리려하시니, 나는 죽을지언정 항복하지는 아니하겠습니다.”
유심의 간장을 도려내는 처절한 통곡이 전각을 쩌렁쩌렁 울렸다. 후주는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측신을 시켜 유심왕자를 궁문 밖으로 내치게 했다. 그리고 초주에게 영을 내려 항서를 쓰게 했다. 초주의 손으로 항서가 마련되자 사서시중 장소와 부마도위 등양 그리고 초주가 옥새와 항서를 가지고 낙성으로 가서 항복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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