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국이 무너지는 소리여!②

성도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등애는 날마다 수백의 기마병을 성도성으로 보내어 후주 유선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마병 하나가 급히 달려와서 고하였다.
“성도 성문위에 백기가 달렸습니다. 항복을 결의한 모양입니다.”
“그렇담 내 일이 성공되었구나!”

등애가 짧게 대답하며 미소 짓고 있을 때 초주 등 세 사람이 항서와 옥새를 가지고 왔다. 등애는 여유를 부려 의자에 앉은 채 측근 장수를 시켜 맞이하게 했다. 초주 등 세 사람은 뜰아래 엎드려 절하고 항복하는 문서와 옥새를 받쳤다. 등애가 여유자적(餘裕自適)한 미소를 흘리며 항서를 뜯어보고 매우 만족해하며 옥새를 챙겼다. 그리고 세 사자를 후하게 대접하고 답서를 써 주며 당부하기를
“그대들은 곧 성도로 돌아가서 인심을 편안케 하라!”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셋은 절하고 성도로 돌아와 후주에게 등애가 써 준 답서를 올리고 자초지종을 복명했다. 후주는 등애의 답서를 보고 기뻐하며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칙서를 써서 태복 장현을 주어 강유에게 보냈다. 강유더러 위국에 항복하라는 칙서다. 상서랑 이호는 서촉의 문부를 등애에게 바치게 했다.
이 문부에 의하면 서촉은 28만호에 인구는 남녀 합하여 94만이고 장졸이 10만2천이고 관리가 4만이었다. 또 양곡은 40만석이 창고에 적재 되어 있고 금과 은이 3천근. 비단과 견사가 각각 20만 필이었다. 그 외에 잡동사니가 아주 많으나 이만 약한다.

항서의 끝에 12월 초에 군신이 다 함께 항복한다고 적었다. 북지왕 유심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방성통곡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아먹고 칼을 지팡이 삼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 궁 안으로 유심이 들어가자마자 부인 최씨가 묻기를
“대왕께서는 매우 안색이 좋지 못하십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이 나라가 망했어요. 싸워보지도 않고 부왕이 손을 들었답니다. 이미 항복한다는 문서를 적에게 바쳤답니다. 내일은 임금과 신하가 모두 성 밖으로 나가 엎어져 절하며 항복한다오. 사직은 이제 완전히 망하고 말았구려. 나는 먼저 죽어서 지하에 계신 선제폐하를 만나 뵈러 가겠소. 나는 먼저 죽어 적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할 작정이오.”
“대왕! 참으로 장하십니다. 돌아가실 곳을 얻으셨습니다. 첩은 먼저 대왕 앞에서 죽을 테니 천천히 볼 일을 보시고 따라 오십시오. 그래도 늦지 아니할 것입니다. 유심의 부인 최씨는 남편을 그렇게 칭찬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자 유심이 아내에게 묻기를

“당신은 왜 구지 죽으려 하시오?”
“어찌 제 남편인 낭군께서 섭섭한 말씀을 하시오니까? 대왕께서 나라일로 돌아가시고 첩은 대왕을 따라 죽으니 그 의리는 다 같이 한 가지입니다. 남편이 가시는 길을 아내가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최씨부인은 그리 말하고 동시에 댓돌에 머리를 찧어 유심보다 한 발 먼저 죽었다. 유심은 오장육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눈물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아내의 시체를 거둔 후, 한 동안 말이 없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눈동자가 예쁜 어린 세 아들을 죽이며 말하기를
“아가들아! 이 땅은 너희가 살만한 땅이 못된단다. 가자. 우리 함께 떠나자!”
그와 같이 만가를 불러 주고 아내와 세 아들의 수급을 베어 들고 소열묘 안으로 들어갔다. 네 사람의 수급을 진설하고 위패를 향하여 분향사배하고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기를

“신은 백년 기업을 남에게 내어 던지는 참상을 차마 볼 수 없어, 먼저 처자를 죽여서 분한 마음을 끊고, 남은 저의 목숨을 할아버님께 바칩니다. 존경하고 숭배하는 할아버님 만약 영혼이 계시다면 이 못난 손자의 마음을 알아주시옵소서.”
방성통곡하니 눈에서 선지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유심은 울기를 다하고 칼을 빼어 목을 찔러 자진했다.
촉나라 사람들은 이 기막히게 슬픈 소식을 전해 듣고 애통해 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뒷날 시인은 이 슬픈 사연을 시로 써서 찬양했다.

‘임금과 신하가 달게 무릎을 굽히는데/ 한 아들만 홀로 슬프게 마음 상해라./ 서천 일은 다 틀렸는데 장하다. 북지왕이여!/ 몸을 죽여 소열제께 바치고/ 머리 긁어 푸른 하늘 바라보며 울었네./ 늠름한 기상, 사람이 곧 살아 있는 듯하다./ 누가 한나라가 망했다 하는가?/’
다음 날 정복자 위병들은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후주 유선은 태자와 제왕과 군신 60여 인을 거느리고, 얼굴을 가리고 몸을 묶고 관을 실은 들것을 매고, 북문 10 리 밖으로 나가서 등애에게 항복했다. 등애는 손수 후주를 일으켜 세우고 관과 들것을 불사른 후에 수레를 가지런히 하여 성도성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촉국이 망한 일을 생각하며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위병 수만 명이 서천으로 들어가니/ 후주는 살기를 도둑질하여 자재할 기회를 잃었네./ 황호는 마침내 나라를 속일 뜻을 두었고/ 강유는 부질없이 제세의 재주를 가졌을 뿐/ 충성을 온전케 한 의사의 마음은 어찌 그리 뜨거우냐?/ 절개를 지킨 왕손의 뜻은 애절하구나!/ 소열제의 경영이 진정 쉽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그 공업 돈연히 재가 되었네./’
성도 도성사람들은 제 살기에 급급했다. 등애의 군대를 위하여 향화를 갖추어 영접했다. 원래 정복자를 맞이하는 예법이 그런 것이다. 등애는 진중하고 근엄한 얼굴을 하고 위국 천자를 대신하여 우선 후주에게 표기장군을 봉하고, 나머지 문무백관들은 그 품계에 따라 벼슬을 봉하였다. 후주와 그 가족들은 당분간 궁으로 들어가 살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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