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 감상 -33
- 蕭蕭吟(소소음) - - 비 오는 소리를 읊다 -
窓外雨蕭蕭(창외우소소)하니, 창 밖에 비가 후두두 내리니,

蕭蕭聲自然(소소성자연)을. 후두두 소리가 자연스럽기도 하여라.

我聞自然聲(아문자연성)하니, 내가 그 자연스런 소리 듣노라니,

我心亦自然(아심역자연)을. 내 마음 또한 자연스러워지는구나.

◆지은이 장씨(張氏):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어머니.
이 시는 지은이의 심경이 비 소리를 매개로 자연스러움의 경지로 몰입해 가는 과정을 읊은 작품이다.
제일의 편안함은 자연스러움 속에 있고, 제일의 아름다움도 역시 자연스러움 속에 있다. 노자(老子)는 일찍이 “人法地(인법지)하고 地法天(지법천)하고 天法道(천법도)하고 道法自然(도법자연)이라”고 했다. 즉 “사람은 땅을 법으로 삼고, 땅은 하늘을 법으로 삼고, 하늘은 도를 법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자연은 인간과 땅과 하늘과 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최상의 경지인 것이다.

모든 것의 가장 완벽한 원리는 바로 자연이다. 자연이란 인위적인 계교를 쓰지 않고 상황에 맞게 절로 움직여 가는 것을 말한다. 인위는 언젠가는 한계에 부닥쳐 종말을 맞게 되지만, 자연은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졌기에, 늘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 또는 의식의 변화는 어떤 사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계기로 하여 이루어진다. 집안 일에 노심초사하다가, 어느 비 오는 날 창 밖의 비 소리를 통하여, 지은이는 인위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 속으로 몰입해 가게 된 것이다. 사람의 내면 세계는 외부의 환경과 박자를 맞추게 되는 것인데, 지은이는 인위적 굴레를 놓아버리고 자연스런 비 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내맡겼던 것이다. 그 결과 지은이는 여느 사람들이 맛보지 못할 자연함 속의 행복을 맛보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예의범절(禮義範節)로 자신을 단속하는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여인인데, 의외로 자연의 덕을 충분히 알고, 또 그 속에 동화되어 가는 자신의 심경을 잘 읊고 있다는 데서,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한국 한시 감상 - 34
- 白馬江(백마강) - - 백마강 -
晩泊皐蘭寺(만박고란사)하야, 저물어 고란사에 머물러,

西風獨倚樓(서풍독의루)를. 서풍을 맞으며 홀로 누각에 기대섰네.

龍亡雲萬古(용망운만고)요, 용이 사라지자 구름만 만고에 서려있고,

花落月千秋(화락월천추)를. 꽃이 진 자리에 달빛만 천추에 비추이네.

◆지은이 취선(翠仙): 호서지방(湖西地方)의 기녀(妓女).
이 시는 백제의 슬픈 운명을 추억하면서, 백제의 원한이 깊게 서린 백마강의 전경을 읊은 시이다.
한 번 흥하면 한 번 망하는 것은 천하 만국의 역사인데, 백제의 멸망사(滅亡史)는 유독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것은 아마 그 역사 속에 순결한 절개와 처절한 눈물이 서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을 칼로 벤 후 오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서는 계백 장군에게서 더할 수 없는 순결함과 처절함이 보였고, 백마강 절벽 위에서 꽃이 되어 하나둘 떨어진 삼천 궁녀에게서도 무한의 순결함과 처절함이 보였다. 백제의 최후를 결코 추하지 않게 만든 것은, 바로 이들의 순결함과 처절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황산벌과 백마강은 결코 황폐한 패전지가 아니라, 신성한 순교지였던 것이다.

지은이는 기생이란 직업을 가졌는데, 시를 잘 한다. 그런 그녀가 날이 저물 때 서풍을 맞으며 백마강 변의 고란사 누각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이때 그 옛날 이 땅에서 일어난 고사가 상기(想起)되었고, 이에 한 줄기 감회와 한 수의 시가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옛날 용(龍)을 낚던 조룡대(釣龍臺)가 백마강에 있었는데, 이미 그 곳에는 용은 사라지고 용이 남긴 구름만 예전처럼 서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꽃 같은 궁녀들이 몸을 던진 백마강의 낙화암(落花巖)에는 이미 모든 흔적이 사라졌지만 달빛만 천추에 비추이고 있는 것이다. 밤의 꽃은 달빛을 만날 때 더욱 찬란해지는 것이다. 자신을 빛내줄 달은 천추에 높이 떠 광채를 쏟아주는데, 삼천궁녀 꽃은 이미 사라졌으니 애석한 일이다. 지은이가 이 시에서 말하려는 것이 바로 이 점인 것이다. 달빛만 두고 가버린 그 꽃들을 지은이는 가슴 아파 하는 것이다.

이 시는 역사의 세계와 감정의 세계가 잘 조화시켜, 감상자의 공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낸 회고적(懷古的)인 성격의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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