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종회, 등애의 최후.③

독자 여러분께서는 강유가 강태공의 후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의 기념비적인 활동이 그 고향땅의 이름을 고려국 강감찬의 시호위에 올려놓았음을 기억하라. 그래서 재차 삼국지를 대할 때는 제갈무후의 제자 강유가 아닌 강태공의 후예 강유로 보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또 강감찬의 시호 속에 고향땅 천수현(天水縣)을 심어 둔 장본인이 강유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라는 것이다. 강유도 가고 종회도 가고 등애 마저 갔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중국천지를 뒤흔들던 인물들이 같은 날 다 죽었다. 이렇게 큰 인물이 셋씩이나 사라졌건만 산천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비가 왔다는 기록도 없다. 천문 상에도 이상한 징후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역사의 기록자들이 진나라를 미화하여 중원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일부러 절제한 모양이다.
강유, 종회, 등애가 죽었으니 천변지이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천문상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마소라는 태양과 다시 더욱 빛날 태양! 사마염을 염두에 두고 이리 건조한 글로써 이야기를 절제한 것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한편 사마소는 종회를 잡고자 장안으로 천자를 이끌고 출정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 한바 있다. 그런데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정국이 안정될 줄 믿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허무하게 종회가 죽어 버렸다. 그 뒤를 따라서 강유도 죽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등애 마저 죽어 버렸다. 장애물이 모두 일시에 제거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마소는 할 일 없이 보고만 받고 그냥 장안을 떠나 낙양으로 회군했다. 사마소로 봐서는 아주 잘 된 대청소였다. 그 청소부는 누가 뭐래도 위관이다. 그런데 죽은 자가 그것만 아니었다. 강유, 종회, 등애가 죽자 연이어 촉에서는 장익이 죽고 태자 유선이 죽고 한수정후 관이가 죽었다. 위병에 의해 살해 되었다.

“전쟁은 끝났는데 왜 죽여?”
느닷없이 태자가 죽고 여러 장수들이 살해되자 성도 사람들은 크게 놀라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 서로 죽이고 상하고 달아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글자 그대로 난장판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성도였다.
그런 혼란한 정국이 펼쳐진지 10여 일이 지나서야, 사마소가 가충을 성도로 보내 방을 붙여 백성을 위무하게 했다. 비로소 방의 효과로 들끓던 민심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법천지 무질서의 세상이 안정을 찾아가니 질서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가충은 위관으로 성도를 지키게 하고 후주 유선을 낙양으로 데려갔다.

후주가 성도를 떠나 낙양으로 가는 길엔 상서령 번건과 시중 장소와 광록대부 초주 그리고 극정만 따라갔다. 요화와 동궐은 병을 핑계로 따라 가지 않았다. 그러나 망국의 한을 품고 울화병이 들어 얼마 뒤 요화는 죽었다. 이때가 위의 경원 5년이나 연호를 바꿔 함희 원년이었다.
함희 원년 봄 2월. 오장 정봉은 촉한이 망하자 원정 갔던 군사를 거두어 귀국했다. 얻은 것이 없는 허탈한 귀국이었다.

촉한이 완전히 망한 것을 보고 중사승 화핵이 오왕 손휴에게 아뢰기를
“우리 오나라와 촉나라는 순치관계였습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사마소가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우리나라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방어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소. 경의 말이 옳소.”
손휴는 화핵의 말을 옳게 여기고, 육손의 아들 육항을 진동장군을 삼고 형주목을 겸임하게 하여 강구를 지키게 했다. 그리고 또 명령을 내리기를

“노장 정봉은 병마를 총독하고 좌장군 손이는 남서 부근과 연강 일대를 지키고 수백 개 영문에 둔병하라.”
오왕 손휴는 제장들을 요충지로 보내 위병의 침입을 막고자 준비에 철저를 기했다. 이때 촉한의 건녕태수 곽과는 성도가 함락되자, 소복으로 갈아입고 3일 동안 금식하고 통곡했다. 태수가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자 제장들이 간하기를

“나라가 망해서 임금이 자리를 잃었는데 무엇을 더 바라십니까? 빨리 항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워낙 오지라 길이 멀리 떨어져 있어 임금의 안위를 알 수 없다. 만약 위왕이 우리 폐하를 예로써 대접한다면 그때 가서 항복해도 된다. 그러나 만약 임금을 위태롭게 하고 욕되게 한다면 주욕신사가 당연한 일이다. 죽지 아니하고 내 어찌 항복하겠느냐?”
“태수님의 말씀이 백 번 옳습니다.”
곽과태수는 수하 장졸이 모두 자기주장이 옳다고 말하자, 곧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서 후주의 근황을 알아오게 했다.

한편 후주는 별 어려움 없이 낙양에 당도했다. 이때 사마소는 위왕과 함께 장안에서 낙양으로 회군하여 돌아와 있었다. 사마소는 후주를 만나자 마자 책망하여 말하기를
“촉주가 어진 이를 조정에서 축출한 결과 실정을 했으니 마땅히 참해야 하겠소.”
“저는 진공에게 지은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공의 군대가 너그럽다 하여 곧바로 항복을 드렸는데 어찌 주살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후주는 벌벌 떨면서 얼굴이 흙빛이 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자 아주 볼품없어 보이는 후주를 바라보던 문무백관이 사마소에게 간하기를

“촉주가 나라의 기강은 잃었지만 일찍이 항복해서 예를 갖추었으니 목숨을 붙여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긴 저런 위인이야 살려두나 죽이나 그게 그것이 아니겠는가? 참 용종인줄 알았더니 미꾸리만도 못한 모질이구나!”
사마소는 입에 담아서는 아니 될 추한 말을 후주의 면전에서 함부로 하고 백관들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후주 유선을 안락공을 봉했다. 참으로 항복한 천자에게 내리는 작호치고는 웃기는 작호다.
‘安樂公’
이것이 사마소가 준 유비현덕의 아들 촉나라 천자 유선의 작호였다. 후주 유선은 나라가 망하여 안락공이 되었다. 현덕이 살았다면, 자룡이 살았다면 얼마나 분해하고 원통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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