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사마씨의 것②

세월이 많이 지난 후 안락공을 두고 시를 지어 탄식했다.
‘환락을 좇아 풍악소리 들으며 벙긋벙긋 웃는 얼굴/ 망국한이란 반점도 없구나!/ 이향의 쾌락에 취하여 고국산천 다 잊었구나!/ 바야흐로 후주가 백치인 것을 알았네./’
위국 조정에서는 사마소가 서촉을 점령한 큰 공을 들어서, 왕으로 삼고자 위왕 조환에게 표를 올렸다. 조환은 이미 아는바와 같이 실권이 전혀 없는 허수아비 천자다. 대신들의 공론을 거부할 이유도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순순히 진공 사마소를 높여 진왕을 삼았다.

조환은 조서를 내려 아비 사마의를 선왕이라 시호하고 형 사마사를 경왕이라는 시호를 추존했다. 이들 두 사람은 다 같이 사마소의 오늘이 있게 기초를 다진 아버지고 형이었다.
사마소의 아내는 왕숙의 딸로 두 아들을 낳았다. 장자는 사마염이고 차자는 사마유다. 사마염은 인물이 기걸차고 출중했다. 머리털이 길게 자라 땅바닥에 닿고 두 손길이 화장이 길어 무릎까지 내려갔다. 총명하고 영걸스러울 뿐만 아니라 담이 무척 컸다. 그러나 차자 사마유는 성정이 온화하고 공손하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마소가 늘 사랑했다. 사마사가 아들이 없어서 유를 양자로 보내어 제사를 받들게 했다. 사마소는 늘 신하에게 말하기를

“나의 천하는 실상 우리 형님이 다져놓은 천하다.”
그런 연유로 사마소는 진왕이 된 후에 형의 양자 사마유를 세자로 책봉하려 했다. 이에 산도가 간하기를
“장자를 폐하고 차자로 세자를 책봉하는 일은 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상서롭지 못합니다.”
가충, 하증, 배수 등등 제신이 모두 간하고 만류하기를
“장자 염은 아주 총명하고 신무해서 세상에서 뛰어난 재질이 있습니다. 그는 인신의 상이 아닌 비범한 상입니다.”

그렇게 간해도 사마소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태위 왕상과 사공 순개가 간하기를
“차자로 세자를 봉해서 국가가 어지러운 일이 허다합니다. 전하께서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뜻이 정히 그렇다면 염으로 세자를 삼겠소.”
사마소는 결국 사마염으로 세자를 삼았다. 이때 한 대신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올해 양무현에 하늘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는데 신장이 일반 사람의 두 길이고 발자국이 3척 2촌인데 머리는 희고 수염이 푸른 빛깔이었습니다. 그는 황건을 쓰고 여두장을 짚고 자칭 민왕이라 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제 와서 나에게 말한다. 천하는 주인을 바꾸어 태평세월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3일간 저자를 돌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합니다. 이것은 전하를 두고 상서로운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12줄 황금 면류관을 쓰시고, 천자의 기를 앞세우고 출경입필하시면서, 금근거(金根車)에 6필마로 멍에를 메어 나가시고, 왕비로 황후를 삼으시고 세자로 태자를 봉하소서.”

여기서 출경입필(出警立蹕)이란 글자 풀이를 하면 나갈 때는 경계하는 군사를 두고 일어서면 길을 군사가 치운다는 뜻이니 황제의 행차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대신들로부터 들은 진왕은 마음속으로 심히 기뻐했다. 그러나 궁중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중풍을 일으켜 인사불성이 되었다.
다음 날 8월 신묘일 사마소의 병이 치명적으로 깊어졌다. 태위 왕상, 사도 하증, 사공 순개 등 모든 대신이 진왕궁에 들어가 문안드렸다. 하지만 사마소는 말을 못하니 애써 손을 들어 사마염을 가리키다가 말없이 죽었다. 하증이 여러 대신들 앞에서 말을 꺼내기를

“천하의 큰일을 처결하는 것은 진왕의 권한이오. 세자 사마염으로 왕위에 오르게 하고 발상거애하는 것이 옳겠소.”
“당연한 일이오. 속히 서둘러야 하오.”
태위 왕상이 찬성하자 함께한 모든 대신이 찬성하여, 곧 바로 사마염이 진왕의 위를 계승했다. 진왕이 된 사마염이 인사를 단행하니, 하증을 승상에 사마망으로 사도에 봉하고 석포는 표기장군, 진건은 거기장군을 봉했다. 그리고 아버지 사마소를 문왕의 시호를 올렸다. 장례를 마치고 사마염은 가충과 배수를 궁중으로 불러 묻기를

“옛적에 조조가 말하기를 <만약 천명이 자기에게 있다면 자기는 주문왕이 될 수 있다.>라 말했다, 하니 과연 그런 말을 한 일이 있는가?”
가충이 신중하게 대답하기를
“조조는 대대로 한의 벼슬을 하며 녹을 받은 사람입니다. 역적질했다는 비평을 모면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한 것은 그의 아들 조비로 천자를 삼고자 한 고등 술수의 말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경은 고의 부왕은 조조와 비교한다면 어떻다고 생각되는가?”
가충이 다시 조심스럽게 대답하기를

“조조는 공이 화하(華夏)를 덮었으나, 백성들이 그 위엄에 눌려 두려워하고 마음 깊이 감복치 않았습니다. 그 후 조비가 왕위를 계승하여 안으로는 역사를 일으키고 밖으로는 군사를 움직여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그 후 우리 선왕과 경왕께서 여러 번 큰 공을 세우시고 은덕을 베풀어 천하 사람들이 심복한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다가 문왕께서 서촉을 병탄하시어 공이 천하를 덮었으니 어찌 조조에게 비하리까?”
“그렇다면 조비가 한통을 이었는데 고는 위통을 계승하면 어떠하겠는가?”
가충과 배수가 두 번 절하고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조비가 소한(紹漢)한 고사를 모방하시어 수선대를 마련하시고 천하에 포고하여 대위에 나가십시오.”
“하하하. 고맙소. 경들의 충정을 고는 잊지 아니 하리다.”
사마염은 크게 기뻐하고 두 대신과 헤어졌다.
다음날이 되었다. 대명천지 밝은 낮에 사마염은 칼을 차고 대내로 들어갔다. 이때 위왕 조환은 날마다 조회를 받지 아니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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